1440원대 고점 찍은 환율에 환차익 수요 자극
‘대기자금’ 요구불예금은 하루새 8억원 증가
은행, 외화 유동성 실시간 모니터링 강화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비상계엄 선포 후 하루 만에 주요 은행에서 약 1조2500억원어치의 달러·엔화가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새벽에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치솟으며 고점을 찍자, 더 늦기 전에 환차익을 거두려는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하룻밤새 외화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진 은행들은 외화 유동성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4일 기준 달러예금 잔액은 602억200만달러로, 지난 3일(608억5700만달러)와 비교해 6억5500만달러(1.07%)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지난 10월 말(603억220만달러) 이후 한 달여간의 증가폭을 단 하루 만에 상쇄했다.
엔화예금의 경우 더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4일 기준 5대 은행 엔화예금 잔액은 1조197억엔으로 하루 전날(1조548억엔)과 비교해 351억엔(3.33%) 급감했다. 하루 새 줄어든 달러·엔화예금 가치만 해도 한화로 약 1조2500억원 수준에 달했다.
썰물 같은 외화예금 인출 러시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이 있었다. 3일 오후 11시경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며 원화 가치가 급락했다. 전날 종가 1401.9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야간 거래 장중 1440원대까지 치솟았다. 100엔당 940원대로 마무리됐던 원/엔 환율 또한 970원대까지 올랐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 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연합] |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2시간 30분 만에 국회서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며, 환율은 소폭 진정됐다. 오전 5시경에는 비상계엄령 해제가 공식 발표되며 상승폭 일부를 반납했다. 하지만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며 환율은 여전히 전날 대비 1%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금융권에서는 사태가 진정되며 환율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운데, 환차익을 보려는 수요가 늘어난 결과라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고점을 달성한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보유한 외화를 처분해 이익을 보려는 수요가 몰렸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여전히 이전 상황과 비교하면 높은 환율이 지속되기 때문에, 이전에 환차익을 노리고 외화를 보유한 투자자들의 환전 수요가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면서 “새벽에는 달러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몰리기도 했지만, 사태가 진정되며 반대의 양상이 나타난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임세준 기자 |
외화예금이 빠져나가며, 최근 감소세를 보이던 요구불예금 수치도 돌연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는 환전한 자금을 일시적으로 수시입출금통장에 보관하면서 생긴 현상으로 분석된다. 실제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3일 600조2975억원에서 4일 608조3150억원으로 하루 만에 8억원 이상 늘었다. 요구불예금 잔액은 최근 세 달에 걸쳐 약 15조원가량 줄어든 바 있다.
이에 은행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 사태 직후 은행서 대거 자금이 인출되는 ‘뱅크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경우, 향후 은행들이 보유한 외화 규모가 줄어들며 경기 대응 여력이 약해질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요 은행들은 4일을 기점으로 환율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긴급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외화 조달 계획을 점검해 지속해서 적시에 유동성 확보에 나서겠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 방침이다.
한편 현재 은행들이 보유한 외화 규모는 일정 기준치를 넘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달러’ 현상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외화 보유고를 착실히 늘려온 결과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3분기 말 기준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평균 157.3%로 1년 새 9.4%포인트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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