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표명에 尹 “국가 통수권자의 책임감은 다르다”
의결 아닌 ‘심의’…찬성·반대 함구하는 국무위원들
‘무능’ 여론 비판 감내하며 ‘내란죄 수사’ 대비 포석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와 관련 현안 질의를 위해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계엄령 선포를 위해 절차상 거쳐야 하는 국무회의가 열리고서야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은 윤 대통령의 결정을 전달받았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과 행정부를 구성하는 국무위원들이 계엄령 선포를 막지 못해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는 계엄사령부가 탄생했고, 순식간에 입법부 장악을 시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엄이 해제된 이튿날인 5일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가 열리며 비상계엄 선포 전후의 상황이 조금씩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3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일부 국무위원들을 대통령실 청사로 호출했고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할 생각’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오후 8시40분 대통령실에 도착하니 “장관님들하고 몇 분이 와 계셨다. 대통령을 뵀더니 ‘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국무회의 구성원은 대통령과 총리, 국무위원(장관급) 19명 등 총 21명이며 의사 정족수와 의결 정족수는 각각 11명, 8명이다.
의사 정족수가 채워지자 3일 오후 10시경 국무회의가 열렸고, 회의는 20분간 진행됐다. 국무위원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 장관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계엄령에 대한) 찬성·반대는 있지 않았고, 반대라는 표현을 쓴 분은 두어 명 있던 걸로 기억한다”며 “경제나 외교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 개개인이 느끼는 상황 인식과 책임감, 그리고 국가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다르다”고 말했다고 이 장관은 전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3일 오후 10시17분, 국무회의가 끝나갈 무렵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했다. 조 장관은 “국무회의에 도착했을 때 이미 토론이 진행 중이었다”며 “나는 (계엄 선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바로 윤 대통령이 이석해 더 충분하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통상 국무회의는 국무회의 회의록 작성 업무를 담당하는 행안부 의정담당관실이 각 부처에 연락을 취하지만, 이날 회의에는 불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회의 회의록 존재 여부가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한수 행안부 의정관은 “(의정관실은) 참석을 못했다”며 “그곳에 있던 직원 누군가가 작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와 반대 표명이 있었지만, 의결이 필요 없는 계엄법은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완결성을 거쳐 시행됐다. 국무위원들에게 사전에 안건 내용을 알리지 않으면서 법률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이 완강한 뜻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국무위원들은 누구하나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 장관은 계엄령 선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통령을 어떻게 막느냐. 직위를 던지면 막아지느냐”라고 답했다가 야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대통령실 참모들 역시 계엄령 선포와 관련해 일체의 입장을 함구하고 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전날 김용현 전 장관의 면직 재가를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브리핑장을 빠져나갔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 결정을 내릴 때까지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은 듯 침통한 분위기다.
대통령실 3실장과 전체 수석비서관과 19명의 국무위원 전원은 4일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이번 표명은 지난 4월 총선 결과 직후 한덕수 국무총리 및 국가안보실을 제외한 대통령실의 모든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진이 사의를 표명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계엄령 선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뜻도 있지만, 한발 나아가 참모와 국무위원을 신뢰하지 못한 행정부 수장에 대한 의문을 표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무회의에서 “찬성·반대는 있지 않았다”고 밝힌 것은 향후 수사에 대비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한 상설특검 요구안을 발의하면서 ‘위법적인 선포에 가담한 국무위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전날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은 “누가 찬성했는지 확인하면 된다”며 “찬성했다면 내란 공범”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윤 대통령에 내란 혐의 고발 사건에 대한 직접 수사를 지시했다.
재임 기간 불소추특권을 가지는 대통령도 내란죄에 대해서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고, 모의에 가담한 경우도 징역 5년 이상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을 만큼 형법에서는 내란죄를 중대 범죄로 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내란죄 적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이 장관은 “이번 사안을 내란죄다, (저를) 내란의 동조자나 내란의 피혐의자라고 표현하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신중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계엄령 선포를) 내란죄로 이미 규정하고 현안질의를 한다면 참석할 의미가 없다”며 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