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법 등 경제법안 처리에도 차질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정 위원장이 야당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킬 당시 모습 [연합]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논의도 ‘올스톱’ 됐다. 내년도 예산안이 사상 초유의 ‘준예산’ 집행 사태를 맞을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준예산 위기설’은 여야 예산 협상이 삐걱거리던 과거에도 여러차례 나온 적 있지만, 올해는 어느 때보다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6일 헤럴드경제에 “예산안 처리가 (협의 시한인) 오는 10일에 될지 모르겠다”며 “(감액 예산안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통과) 이후에 서로 협의가 거의 못 이뤄진 데다가 갑자기 이 문제(계엄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은 증액 없이 감액만을 반영한 내년도 예산안을 예결위에서 처리하고, 이를 지난 2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를 거절,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 예산안 합의를 마쳐 달라고 여야에 요청했다.
상황은 윤 대통령의 돌발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탄핵 정국’으로 인해 돌변했다. 모든 국회 의사일정과 여야 원내지도부의 전략이 ‘탄핵 시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 민주당 등 야 6당은 지난 4일 탄핵소추안을 공동발의하고 오는 7일 본회의에서 이를 표결하겠다며 속도전에 나섰다.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기고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입장 차가 여전한 가운데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협의가 이뤄질 만한 물리적인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만일 예산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 이뤄질 수 있다. 헌법 54조 3항은 ‘새로운 회계연도(새해 1월 1일)까지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다음의 목적(▷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을 위한 경비는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 국회 관계자는 “과거에도 예산이 1월 1일이나 2일에 지각 처리되면서 준예산 사태를 겨우 피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준예산 집행이 현실화된다면 내년 상반기 신규 사업은 예산 지출이 불가능하다. 특히 준예산이 단 한 번도 편성된 적 없는 만큼 전례 없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방·치안 관련 예산, 공무원 인건비 등 국가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예산만 써야 하는 만큼 ‘예산 공백’ 사태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이란 우려다. 일각에서는 연초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등 여야 합의에 이른 민생 경제 입법 사안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돼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세법 심사를 담당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의 경우) 여야 협의가 반영된 수정안을 본회의에 올려야 하는데, 현재 원내대표 협상이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대로 처리가 안 되면 금투세 폐지도, 가상자산 과세 유예도 다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한창 협의를 진행하던 경제 법안들도 ‘올스톱’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오는 9일 법안소위를 열어 ‘반도체 특별법’과 ‘국가기간 전력망 특별법’ 등 주요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었으나, 대통령 탄핵소추안 등 표결 이후 정상적인 소위 개최가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반도체 특별법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과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의 예외 허용 여부 등이 골자다. 여야는 지난달 한 차례 진행된 소위 심사에서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놓고 이견을 보인 바 있다. 국가기간 전력망 특별법은 핵심 전략 산업에 필수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주민 보상 강화, 각종 인허가 단축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산자위에는 21대 국회 처리가 무산됐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해상풍력 특별법도 심사 단계에서 계류돼 있다. 고준위 특별법은 방사성 폐기물 중 위험도가 큰 고준위 폐기물(사용 후 핵연료)을 영구 처리할 목적으로, 해상풍력 특별법은 ‘정부 주도 계획 입지 방식’ 전환을 통해 해상풍력을 계획적으로 추진할 목적으로 여야가 ‘패키지’로 묶어 처리하는 입법 논의가 이뤄지던 차다.
김해솔·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