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축사 한켠 버려진 미륵상…‘거꾸로’ 살아내는 존재의 생명력 [요즘 전시]

‘거꾸로 사는 돌’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망가진 축사, 태양광 패널로 덮인 폐교, 관리되지 않은 비닐하우스…. 전시장 한 켠에 자리잡은 2개의 스크린에선 2초마다 기억 저편의 장소로 화면이 바뀌며 오랜시간 방치된 미륵상의 모습이 원경으로 드러난다. 영생불사의 불상인가, 버려진 돌인가. 언뜻 의문 하나가 피어오를 즈음 작품 제목을 다시 훑는다.

‘거꾸로 사는 돌’(2024). 고결·김중원·조지은 세 작가가 결성한 시각연구밴드 이끼바위쿠르르가 출품한 10여 분 분량의 영상 작품이다. 미륵이 말하는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품어 ‘거꾸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상상했다는 게 이끼바위쿠르르의 설명이다.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2024. [아트선재센터]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2024. [아트선재센터]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올해 마지막 전시로 이끼바위쿠르르의 첫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을 선택했다. 자연에 뒤덮인 채 시간을 버텨낸 돌과 그 장소를 발견하며 과거를 살아내는 존재에 주목한 전시다.

특히 미륵 형상을 한 돌 이미지가 전시장 사방을 채웠다. 한지에 숯으로 문질러 탁본한 프로타주 작업부터 조각, 영상까지 매체를 넘나든다. 미륵은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뒤를 이어 56억7000만 년이란 까마득히 먼 훗날 홀연히 나타나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다. 미륵이 도래한 세상은 낙원의 땅, 이상 세계다. 그래서 미륵은 불교를 넘어 무속 신앙과 어우러져 마을의 수호신이나 일상을 지켜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사찰 주변이나 마을 어귀에서 사람들의 곁을 지켰달까.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잊히고 방치된 미륵상 상당수는, 마치 버려진 돌처럼 남아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조지은은 “‘저쪽 풀섶에 불상이 있다더라’ 같은 마을 사람들의 전언을 따라 2~3시간 동안 근처를 배회하면서 하나하나 찾았다”며 “방치된 불상이지만 마주했을 때 생명력을 가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생동하려면 버려져야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끼바위쿠르르는 약 1년간 전국 60여곳을 누볐다.

‘언두 플래닛’(Undo Planet)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언두 플래닛’(Undo Planet) [아트선재센터]


같은 기간 아트선재센터에서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문제를 고찰하는 ‘언두 플래닛’(Undo Planet) 전시도 진행된다. 지난해부터 강원도 철원에서 현장 연구를 한 작가 5팀을 포함해 총 17팀의 작가의 작품이 ▷비인간 ▷대지 미술 ▷커뮤니티 등 3개의 주제로 나뉘어 소개된다.

작품을 위해 홍영인은 DMZ 두루미평화타운과 겨울철 비무장지대로 날아오는 두루미를 탐조했다. 양혜규는 서울대 기후연구실과 꿀벌 연구를, 타렉 아투이는 철원 소재 어린이합창단과 일상에서 쉽게 발견하는 물건의 소리에 집중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작품이 바로 하얀 모래 위에 설치된 여덟 쌍의 두루미 신발, 소련과 미국 사이 생화학 무기 사용을 두고 벌였던 이른바 ‘황색비’ 논쟁의 가상 꿀벌화자 ‘봉희’,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연주해보는 악기들 등이다.

미국 유타주에 설치된 대지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 제작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로버트 스미스슨의 1970년작 ‘나선형 방파제’와 낸시 홀트의 1978년작 ‘태양 터널’ 작업 과정이 기록된 영상이 나란히 상영된다.

한편 아트선재센터는 내년엔 1959~1974년 초기 회화 실험을 조망하는 하종현 개인전(2~4월)을 시작으로 홍영인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5~7월), 스페인 현대미술 작가 10인 그룹전(5~7월), 아르헨티나 조각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개인전(8~12월)을 열 예정이다.

두 전시 모두 내년 1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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