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한 김용현, 속내는 달랐다…비상계엄 두고 “험난한 정의의 길”

속내 묻자 ‘험난한 정의의 길’ 답변
사임으로 국회 출석 안해, 언론 접촉해 변명

비상계엄 파동의 책임자로 지목받고 있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4일 “비상계엄과 관련해 국민들께 혼란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국방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연합]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에 이어 사의를 표명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사의를 표명한 직후인 4일 밤 속내를 묻는 질문에 이번 계엄령을 ‘정의’로 표현하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사의 표명 이후이자 장관 직위를 유지하던 4일 밤 한 기자가 속내를 묻자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이라는 문자 메시지로 답했다.

이는 김 전 장관 모교인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신조탑에 새겨진 사관생도 신조들 가운데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세 번째 항의 일부로, 계엄이 ‘정의의 길’이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는 이 답문을 보내기에 앞서 국방부 대변인실을 통해 “본인은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밝혔다. 또 “국민들께 혼란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중에도 그는 육사생도 시절 4년 내내 암송했을 글귀로 자신의 ‘속내’를 대신한 것이다.

내란죄 논란과 대통령 탄핵 소추로까지 번진 계엄 사태가 험난할지언정 정의로운 선택이었다는 사고방식을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의가 5일 오전 재가되면서 그는 ‘전 장관’이 됐다. 이에 따라 오전 10시 시작한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에는 장관 직무를 대행하는 김선호 차관이 나갔다.

국회 출석을 피한 그는 대신 일부 언론과 접촉해 ‘반국가세력 정리를 위한 비상조치로 계엄이 필요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국무위원이자 계엄 사태의 주도자로서 전말을 낱낱이 공개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하고 싶은 말만 선택해 꺼내는 행태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는 육사 38기로 1978년 입학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전격 선포한 비상계엄을 실행에 옮긴 인물들인 ‘육사 4인방’ 중 제일 선배다.

계엄을 직접 대통령에게 건의한 김 전 장관을 필두로 계엄사령관 직을 맡았던 박안수(대장) 육군참모총장이 46기, 계엄군 병력이 차출된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곽종근(중장) 사령관이 47기, 수도방위사령부의 이진우(중장) 사령관이 48기다.

실제 병력을 투입한 특전사 제1공수여단 이상현(준장) 여단장은 50기, 3공수여단 김정근(준장) 여단장은 52기, 707특임단 김현태(대령) 단장은 57기로 역시 육사 라인이다.

이들이 주도한 계엄 사태는 대통령실 다수 참모진과 계엄의 주축을 이뤄야 할 군 고위 당국자들에게도 공유되지 않은 채 은밀하게 진행됐다.

현역 군 서열 1위이자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김명수 합참의장조차 비상계엄 선포 이후에야 상황을 파악했을 정도로 계엄 사태는 ‘육사만의 리그’ 속에서 굴러갔다.

김 전 장관은 육사뿐 아니라 출신 고교 충암고 인맥을 뜻하는 ‘충암파’로도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는 충암고 7회 졸업생으로 윤 대통령의 1년 선배다. 계엄이 진행됐더라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을 여인형(중장) 방첩사령관은 김 전 장관의 충암고 10년 후배이며 육사 48기다.

김 전 장관은 고교 후배 대통령의 말에 절대 토를 달지 않는 이른바 ‘예스맨’으로 청와대이전TF 부팀장, 경호처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그간 충암파가 국정을 좌우하고 군을 장악해 계엄을 일으키려 한다는 의혹 제기에 “충암고 출신 장성은 4명뿐”이라며 일축해왔지만, 후배와 실제로 계엄에 나서면서 의혹을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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