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취향으로 규정된 ‘나’…“차라리 내려놔라”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 에밀리 부틀 지음 / 이진 옮김 / 푸른숲


요즘 ‘분위기’, ‘취향’이란 단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수많은 SNS에 인플루언서들이 저마다 ‘나만의 분위기 만드는 법’, “‘나의 취향 이야기’ 등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어떤 브랜드의 어떤 물건을 ‘소비’했는가가 대부분이다.

영국의 문화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에밀리 부틀의 신간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진짜와 허상에 관하여’는 우리가 특정 제품들을 구매하고 이를 SNS에 전시하면서 획득한 ‘진정한 나’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 놓아도 된다고 설득한다. ‘너는 진정성이 없어’, ‘그건 진정성 없는 사과야’와 같이 ‘진정성(Authenticity)’을 광적으로 갈구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예컨대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201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계단을 오르다 드레스 자락을 밟고 넘어질 뻔했다. 이 허당끼 있는 모습이 그의 인기를 더 드높여주자 그 이후로 수년간 ‘꽈당 쇼’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연출했다. 하지만 지겨움을 느낀 대중은 로렌스가 진정성 없는 ‘가식 덩어리’라며 외면했다.

동시에 저자는 “킴 카다시안 일가는 그 어떤 설정을 하고 과장된 모습을 보여도 안전하다”며 예외도 있음을 말한다. 이어 “카다시안 가족은 자기들이 만들어진 가짜라는 사실을 한번도 부인한 적이 없다”며 “가짜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투명하게 시인한 것이 곧 진정성 있는 모습”이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개성 넘치고 반짝반짝 빛나는 셀럽들조차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반인은 어떤가. 더 어려우면 어렵지, 결코 쉽지 않다. 이처럼 진정성을 갈구하는 우리들은 공허함을 충족시켜줄 그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자본주의 사회는 ‘자아감’이 깃든 물건을 사라고 종용한다. 중산층 힙스터가 이 규범을 선도해왔다. 저자는 이에 대해 “즉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가성비 물건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을 반영하거나 개선하는 듯 보이는 정체성의 표식과 같은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정성 있는 빈티지나 수제품을 소유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제품을 ‘선택’한 사람이 됨으로서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제품’은 너무나 다양하고 끝없이 생산돼 ‘나’라는 진정성을 규정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브랜드’다. 매번 물건을 선별하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브랜드를 하나 골라 그곳에서 소비하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좇는 진정한 자아라는 것이 결국 소비 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면, 과연 ‘진짜 나’는 찾을 수나 있을까.

저자는 쉽지 않을 여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순수한 진정성을 찾으려면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 상당한 특권층이어야만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인종, 국적, 외모, 장애 등의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소외 집단’에 발을 걸친 개인은 언제나 주류와 ‘동등한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 의식적인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산발적이고 포괄적인 자아 탐구는 선택의 자유가 완전히 부여된 개인에게 가능하다”면 우리 중 과연 몇 명이나 여기에 안전하게 포함될까. 차라리 ‘진정한 나’, ‘나만의 분위기’를 내려놓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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