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위헌·불법성 확인 시사
“신뢰할 만한 근거 통해 확인”
‘이탈표 8표’ 단일대오 흔들
‘추경호 거취’에 친윤계도 수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과 김건희 특검법 본회의 표결을 하루 앞둔 6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새로이 드러나고 있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김진·신현주·양근혁 기자] “어젯밤 지난 계엄령 선포 당일에 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들 등을 반국가세력이라는 이유로 고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체포하도록 지시했던 사실, 대통령이 정치인들 체포를 위해서 정보기관을 동원했던 사실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서 확인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날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탄핵이 통과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뒤집고 사실상 ‘탄핵 찬성’을 시사한 것이다. 지난 3일 밤 ‘6시간 비상계엄’ 사태 사흘 만이자, 국회 국방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에서 군·경찰 책임자들의 발언으로 사건의 윤곽이 나온 지 하루 만이다. 탄핵소추안과 ‘내란죄’ 특검을 축으로 하는 거대야당의 파상공세 속에 집권여당 수장까지 등을 돌리면서 윤 대통령도 코너에 몰렸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고 이 같은 입장을 내놨다. 한 대표는 전날 밤 계엄 사태 배경과 진행과정의 ‘불법성’을 일부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계엄령 선포 당일 ▷윤 대통령의 여인형 방첩사령관에 대한 주요 정치인 체포 지시 ▷정치인 체포에 정보기관 동원 ▷체포 정치인 과천 수감 계획을 언급하며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한 대표는 구체적인 근거의 내용에 대해 침묵했으나, 이날 한 대표와 사전면담을 가졌던 친한(친한동훈)계 중진 조경태 의원은 “국민의힘이, 또 정치인들이 역사 앞에 죄인이 돼선 안 된다는 취지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국회의원 체포를 통해 계엄 해제 차단 시도는) 내란죄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며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빨리 구속해서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조 의원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그 행위 자체, 위헌적이고 불법적 그 행위 자체가 바로 더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절차에 위헌·불법성이 있다는 지적은 앞서 수 차례 나왔다. 윤 대통령이 4일 한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등과 가진 당정대 회동에서 ‘야당의 폭거에 대한 경고성 조치’라고 정당성을 설명한 사실이 알려진 뒤 위헌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5일 국방위·행안위 현안질의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핵심 역할을 수행한 정황이 짙어지면서 “민간인이 계엄군 지휘권을 휘두른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행안위 현안질의에서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서) 법률적 판단을 하고 자시고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어떤 의견을 표했느냐’란 물음이 나오자 뒤늦게 “저 역시 우려를 표명했다”고 했다. 조규홍 국회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자신의 반대 입장을 밝혔고, ‘계엄령이 위법·위헌이라는 데 동의하냐’는 물음에 “동의한다”고 했다.
집권여당 대표의 ‘탄핵 찬성’ 시사 발언에 윤 대통령도 어느 때보다 진퇴양난에 놓였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6당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속도전에 나섰고, 앞서 윤 대통령이 국회 재의(거부권)를 요구한 김건희 특검법도 본회의에 오를 수순이다. 탄핵안과 특검법 재의결 모두 국민의힘에서 ‘8표 이상’ 이탈표가 나오면 국회를 통과한다. 10여명의 친한계 의원 뿐만 아니라, ‘대통령 하야’를 촉구한 안철수 의원에 더해, ‘소장파’를 자처한 김예지·김상욱·김소희·김재섭·우재준 의원도 “(탄핵안 표결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겠다”며 ‘탄핵·특검 반대’ 당론을 역행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내란죄’로 규정한 민주당은 관련 상설특검법도 추진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탈표 8표’란 심리적 저항선이 한 번 뚫리고 나면 다음은 쉽다”고 했다.
수사기관도 속속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12·3 비상계엄 사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본부장은 박세현 서울고검장이 맡는다. 대검찰청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비상계엄 관련 사건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이 장관이 같은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수사4부(부장검사 차정현)에 배당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도 윤 대통령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관련 수사에 나섰다.
‘두 번째 탄핵은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냈던 친윤(친윤석열)계도 수세에 몰렸다. 친윤으로 분류되는 추 원내대표는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처리된 지난 4일 새벽 “본회의장으로 와 달라”는 한 대표의 요구와 배치되는 ‘중앙당사 의원총회’ 결정과 ‘본회의 표결 불참’ 논란으로 당 내 반발에 부딪혔다. 추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의총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방향을 알고 있다”며 자신의 거취 고심을 밝혔다고 한다. 추 원내대표의 거취 표명이 늦어질 경우 원내부대표 일부가 사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6일 “정황을 보면 추경호 원내대표는 불법 계엄 내란 사태의 핵심 공범이자 주요 임무 종사자”라며 “추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죄 적용과 고발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경험한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탄핵 불가론’이 공고해질 경우 보수 진영 내 신구(新舊) 갈등은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5선의 윤상현 의원은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대통령 탄핵은 헌정에 중대 변곡점이다.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야당 주장에 동참할 수 없다”고 했다. 친윤계 김재원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 직후 기자들에게 “최고위에서 아직까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