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제도가 아니다

전 세계적 탄핵의 일상화 시대 도래
한국 탄핵정국속 성패의 명운 분석
“탄핵, 민주주의 수호 위해 존재” 역설
‘찬반넘어 신중하고 균형적 접근’ 제안


지난 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범국민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이철희 지음 / 메디치


탄핵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언과 국회의 신속한 철회 조치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은 한국 정치를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가는 모양새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 탄핵은 새삼스러운 사건은 아니다 야당이 이미 이번 정권에서 검사, 판사, 방송통신위원장 등 10여명의 인사를 상대로 탄핵 절차를 진행 중이다 보니 ‘탄핵’이란 단어가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대통령 탄핵’ 역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물론 노무현, 박근혜 등 다수의 전직 대통령이 경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탄핵이 ‘뉴노멀’인 시대다.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등 굵직한 정치경력을 두루 가진 저자는 신간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탄핵의 정치학’에서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탄핵은 일상적인 정치적인 행위가 됐다고 말한다.

저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63개 나라에서 132명의 행정부 수반에 대한 탄핵 시도가 최소 172차례 있었다. 이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첫 번째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두 차례나 탄핵 소추되기도 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은 탄핵이란 단어가 상시적으로 거론될 정도다.

저자는 시작은 같았지만 다른 결론을 도출했던 노무현·박근혜, 두 전 대통령의 탄핵 사례를 비교하며 탄핵이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고찰했다. 이와 함께 탄핵을 접근할 때 단순히 찬반을 넘어 탄핵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게 바라보면서 신중하고 균형 있게 접근하기를 제안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는 ▷여소야대 ▷대통령 지지도 하락 ▷대통령의 고립 정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수면 위로 떠오른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야당 연합의 의석 점유율은 80.1%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차 총선에서 대패하며 1당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이에 두 대통령 모두 정책 집행을 할 때마다 거야(巨野)의 벽에 부딪혀 국회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대통령 지지도 역시 두 대통령 모두 30~40%대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하지만 한 대통령은 탄핵의 파고를 무사히 넘어 임기를 모두 마쳤고, 나머지 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저자는 우선 탄핵의 요건이 되는 위법 행위의 ‘중대성’에 대한 경중이 달랐던 데다 탄핵 논의에 대한 초당성, 국민의 지지로 대변되는 대중성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국회의 탄핵 시도를 거스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소추의 원인으로 대선자금이나 측근 비리가 있긴 했지만 문제 제기 주체가 정치권이어서 당파적 판단이 다수 개입됐다. 또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전국적으로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발생하며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최종 결정기관인 헌법재판소 역시 이 같은 민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판단에 영향을 받았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스캔들에 대한 문제 제기 주체가 정치권이 아닌 언론이어서 당파적 판단에서 자유로웠다. 이와 함께 ‘세월호 참사’에 이어 ‘최순실 스캔들’이 이어지며 국민적 배신감이 커졌고, 이로 인한 탄핵 찬성률이 높아진 점은 탄핵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로 작용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처럼 두 전직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완전히 다른 결론에 다달았지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모두 같았다. 정치는 더욱 양극화됐고, 정치 보복은 악순환됐으며, 혐오 정치는 본격화 됐다. 저자는 “탄핵은 견제를 통한 균형 회복의 효과적인 수단임은 틀림없다”면서도 “거대한 탄핵 효과로 인해 민주주의에 해악을 미칠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고 절제된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한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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