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실물이전 증권가 기대한 ‘머니 무브’ 잠잠, 왜? [투자360]

퇴직연금 실물이전 한달 째
IRP 자금 일부 증권사 유입 관측
디폴트옵션·보험 등 환승 가능 상품 제약
회사와 계약된 금융사 내에서만 DC 이동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퇴직연금 실물이전(갈아타기) 시행 한 달째지만 자금 이동은 제한적인 흐름이다. 당초 은행권에서 증권사로 자금 이동이 예상됐지만 은행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되레 늘어났다. 제한된 운용기관 변경 등 제도적 한계와 퇴직연금 특성상 안정 성향이 ‘머니 무브’에 제약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기준 최근 한 달간(10월31일~11월28일) 퇴직연금 확정급여형(DB)으로 1462억원이 순유입 됐다. 나머지인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는 각각 106억원, 404억원이 순유출 됐다. 증권사 수치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은행권 IRP 자금 일부가 증권사로 유입된 것으로 관측된다. 보험사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80%가 보험계약으로 묶여 사실상 실물이전이 제한된 점을 감안하면, 은행과 증권사 간 유치전 대결 초반 승기는 은행이 잡은 셈이다.

실물이전이란 기존 퇴직연금 운용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다른 금융사로 옮기는 제도로 지난 10월 31일 시행됐다. 기존에는 퇴직연금 사업자를 변경할 경우 기존 상품을 해지해 현금화한 후 재가입해야 했다. 중도해지 금리, 기회비용 등 손실도 감수해야 했다. 제도 시행으로 은행증권보험사로 갈아타는 길이 열리면서 퇴직연금 적립금 점유율 과반을 차지하는 은행권 자금 이탈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수익률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증권보험사로 이동이 예상되면서다.

실물이전 효과가 미미한 이유를 두고 제도적 한계가 지적된다. 우선 환승 가능한 퇴직연금 대상에 제한이 있다. 예금·공모펀드(MMF제외)·상장지수펀드(ETF) 등 대부분의 상품은 실물 이전이 가능하지만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영제도), 보험, 리츠 등 상품은 이전이 불가능하다. 가능하더라도 사업장(회사)와 계약을 맺은 금융회사가 해당 상품을 취급해야 가능하다.

DC·DB 상품의 경우 퇴직연금 가입자가 원하는 금융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소속된 사업장과 퇴직연금 계약을 맺은 금융사 중에서는 이동이 가능하지만 아닐 경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업장이 새로운 금융사와 계약을 맺기 위해선 근로자대표 동의를 얻어 고용노동부에 퇴직연금규약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처리 기간이 일주일이 걸리는데다 사업장에서 수수료 등을 부담해야하는 만큼 현실적 제약이 있다. 대기업의 경우 복수 선택지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금융사 한 곳과 계약을 맺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DC는 사업주가 수수료도 부담해야하고 관리 비용이 늘어날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다 결과적으로 노사 간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자유롭게 모든 사업자 간의 이동이 어려운 점은 있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규약이나 노동부에 신고하는 절차들을 다 밟아야 되는데 대기업들이야 준비들이 되어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사업장은 아직 (준비가) 안 됐을 것”이라고 했다.

‘퇴직금=안전자산’이란 인식도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퇴직연금 적립금 400조원 중 원리금 보장형 운용비중은 87.2%에 달한다. 원리금 손실 위험이 있는 실적 배당형 상품 비중이 낮은 구조다. 아울러 제도적으로 총액의 30%는 반드시 안전자산에 넣어야 한다는 제약도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에서도 다소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한정적 인원들이 옮겼을 것으로 보이고, 당장 옮길 만한 요인이 있기 어렵다”며 “다만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안 돼 추후 흐름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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