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리스크 커지자 투자심리 ‘뚝’
朴전대통령 탄핵안 발의때도 급감
“코스피 약세 당분간 지속 전망”
지난 3일부터 몰아친 ‘계엄 삭풍’에 투자자들이 증시에 투자하기 위해 마련해 둔 일명 ‘증시 주변 자금’이 줄어들고 있다. 계엄부터 탄핵 정국까지 국내 정치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심리가 위축, 증시 주변 자금에도 변동성이 생긴 것이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가 증권사 계좌에 넣어 둔 ‘투자자 예탁금’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11월 22일 이후 처음으로 49조원대로 내려앉았다.
투자자 예탁금과 신용거래융자 잔고 등 투자자들이 증시 주변에서 투자 기회를 살피며 증시 진입을 기다리는 ‘증시 주변 자금’ 또한 비상계엄 사태 전후로 낙폭이 큰 상황이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당일 증시 주변 자금은 ‘폭삭’ 주저앉았다.
금융투자협회 증시자금추이 자료에 따르면 증시 주변 자금은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기 이전인 2일 174조2500억원에서 계엄령 선포 당일인 3일 171조2948억원으로 자금이 약 2조9000억원가량 빠졌다. 이후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엔 172조9617억원으로 약1조6000억원 소폭 증가했으며 5일엔 173조7702억원 올랐다.
증시 주변 자금은 ▷투자자 예탁금 ▷파생상품거래 예수금 ▷환매조건부채권(RP) ▷위탁매매 미수금 ▷신용거래융자 잔고 ▷신용대주잔고를 모두 더한 값이다.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증시 주변 자금이 크게 흔들렸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를 제외한 증시자금 추이만 봤을 때도 증시 주변 자금과 같은 흐름이다. 증시자금은 2일 157조6656억원에서 비상계엄 당일인 3일, 154조726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엔 156조5737억원으로 전일 대비 약 1조848억원 증가했으며 5일엔 157조4542억원을 기록했다.
8년 전인 2016년 12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 발의 이후에도 증시 주변 자금은 휘청인 바 있다. 당시 투자자 예탁금은 20조원대로 2016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증시자금도 104조원대에서 탄핵안 발의 이후 102조원대로 떨어졌다.
한편 투자자가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크게 줄어들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와 신용대주잔고를 합한 ‘신용공여 잔고’ 추이를 보면 2일 16조5844억원→3일(비상계엄 선포 당일)16조5683억원→4일 16조3879억원→5일 16조3160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잔고가 쪼그라들고 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통상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많을수록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줄어드는 추세로 보아 이는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는 줄고 변동성에 이탈한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코스피 지수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7월 11일과 비교해 보면 현재 줄어든 증시 자금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7월 11일 당시 증시자금은 161조3138억원으로 지난 5일 증시자금보다 약3조8596억원 많다. 신용공여 잔고도 7월 11일엔 20조610억원으로 지난 5일 16조3160억원 대비 약 3조7450억원 많아 현재 투심이 크게 위축됐음을 보여준다.
통상 증시 불안이 이어지면 투자자들은 갈 곳 잃은 자금을 넣어두는 파킹형 통장을 이용한다. 이를 방증하듯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잔액은 비상계엄 당일인 3일 83조8355억원에서 5일 84조1606억원으로 증가했다. CMA 잔액은 8월 23일 88조1608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찍은 뒤 10월 30일 79조8794억원까지 떨어졌다가 현재 다시 늘어난 셈이다.
CMA는 증권사가 고객의 자금을 받아 기업어음(CP)·국공채·양도성예금증서(CD) 등 상품에 투자해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계좌다.
이처럼 증시 주변 자금이 일시적으로 쪼그라들었다 늘어나는 등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증시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탄핵 표결 결과와 상관없이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 번 시장의 신뢰가 떨어지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에 코스피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V자 반등은 어렵지만 하락도 제한적인 국면”이라며 “극단적 시나리오 현실화 가능성이 상당 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이제부터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지수 전반으로 나타나기보다 업종에 국한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