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소매판매액지수 최장기 감소세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경기 불안 심리가 커져 소비자들이 지갑을 더 조이고 우리 경제가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올라왔던 2004년과 2016년 모두 향후 경기를 내다보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악화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제 성적표도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된 2004년 1분기 향후경기전망CSI는 73으로, 2분기 들어 64로 큰 폭 하락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되었음에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경기 전망이 어두워진 것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심리지수도 95에서 89로 내렸다. 당시 향후경기전망지수는 60대를 유지하다가 2005년에야 108로 올라섰다.
향후경기전망CSI는 소비자들이 판단하는 6개월 뒤 경제 상황에 관한 지표로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아래면 향후 경기 전망이 부정적임을, 100보다 위면 향후 경기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경제 주체가 더 많았음을 나타낸다.
이같은 추세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나타났다. 박 전 대통령 관련 ‘태블릿 PC’ 논란이 불거진 2016년 10월 향후경기전망CSI는 80으로 나타났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적으로 밝혀진 다음 달 64로 16포인트나 떨어졌다. 이후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인용된 이듬해 3월 경기전망이 77로 되살아났다.
당시 소비심리지수도 10월까진 100을 웃돌았지만 이후 하락하기 시작했고, 경기 전망 지수 변화를 뒤늦게 반영해 2017년 1월 93.3으로 약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후 조기 대선 국면을 맞은 2017년 4월에야 소비심리지수는 100을 웃돌았다. 향후경기전망CSI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5월 111을 기록했다.
탄핵은 경기심리뿐 아니라 경제성장률도 끌어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 당시 분기별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2004년 1분기 1.423%에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고유가·고환율이 겹쳐 2분기 0.834%로 주저앉았다. 3분기엔 더 낮은 0.256%를 기록했고, 4분기 들어 0.82%로 올라섰지만 2005년 1분기(0.936%)까지 0%대 성장을 면치 못했다.
2016년에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중국 경기 둔화로 교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혼란을 가중했다. 경제성장률은 2016년 1분기 0.383%에서 2분기 1.254%로 살아났지만 3분기 다시 0.389%로 고꾸라졌다. 4분기 0.773%로 0%대를 유지했고, 이듬해 1분기 1.119%로 간신히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이번 탄핵 정국이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리 경제는 1분기 1.3% 성장했지만 2분기 건설업 성장률이 크게 악화하면서 1년 6개월 만에 역성장(-0.228%)을 기록했다. 3분기 분기 성장률은 0.134%로, 고환율과 내수 부진으로 장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심리도 마찬가지다.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0.7로 간신히 100선을 지키고 있고, 향후경기전망CSI는 74로 전달 대비 7포인트 내렸다. 이는 지난 11월(74) 이후 최저 수준이며, 2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3분기 내수 경기 주요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100.7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1.9% 줄었다. 2022년 2분기 처음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2년 반째 악화하고 있다. 이는 또한 1995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장 기록이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최고조로 올라간 상태로, 경제 주체들은 소비할 생각이 있어도 자제할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던 정책도 지체되면서 (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향후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시점 등과 관련해 “현재 진행되는 속도를 보면 빠르면 2~3주, 늦으면 한 달 안에 어느 정도 시계가 명확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렇다면 지난 탄핵 때와 같이 상황이 비슷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내다봤다. 문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