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폭력적이면서 아름다워”
차기작, 전작 ‘흰’과 형식적 연결
소설가 한강이 지난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이 끝난 뒤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다. [연합] |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중략)/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가 한강이 1979년 4월, 여덟 살 때 쓴 시를 읊으며 시작한 강연이 지난 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강은 200명 안팎이 지켜보는 가운데 32분 동안 자신의 장편 작품을 위주로 지난 31년간의 작품 세계를 회고했다. 한강은 준비해온 한국어 원고를 읽었고, 영어와 스웨덴어 번역은 종이에 인쇄돼 참석자들에게 배포됐다.
한강은 “장편 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완성까지)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 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 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2014년 발표한 ‘소년이 온다’에서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질문에 천착했다고 밝혔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중략) 책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면서 한강은 “세계는 어째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이 오랫동안 그의 글쓰기를 이끌어 온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2~3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며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여덟 살 한강이 사랑이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라고 했듯 말이다.
차기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짧게 소개했다.
이어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돼줬고, 연결돼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