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괜히 움츠리게 돼” “눈치보여”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도 임시 폐쇄
학교측 “아직도 항의성 전화 빗발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2021년 9월 8일 고교 모교인 서울 충암고등학교를 방문, 후배인 야구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12·3 사태’의 여파가 서울 충암고등학교까지 번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의 모교라는 이유로 학교와 학생들이 비난을 받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에 학생들 사이에선 ‘억울하다’는 반응과 함께 ‘출신 학교를 평생 숨기고 싶다’ 등의 자조적인 말이 오가고 있다.
10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충암고 학생 A군은 “그동안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A군은 “비상계엄 이후 순식간에 부끄러운 학교로 전락했다”면서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내가 먼저 ‘충암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꺼낼 일은 없을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충암고에 재학 중인 학생 B군은 ‘불똥이 잘못 튀었다’며 억울해했다. B군은 “내가 다니는 학교가 전국적인 비난을 받게 될 줄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우리와 계엄사태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괜히 움츠러들고 어딜 가든 눈치보게 된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당당하게 교복조차 입지 못하는 현실이 억울하다”면서 “친구들끼리 모여서도 ‘몸 사려서 나쁠 것 없다’는 말을 한다”라고 했다.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들도 눈치보기가 늘었다고 털어놨다. 충암고 졸업생 이모 씨는 “잘못된 선배 몇 명 때문에 애꿎은 후배들만 위축되는 것 같다”면서 “연말 기념 고교 동창끼리 모이려 했었는데 마음 불편해 이번엔 모이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이씨는 “동창들끼리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우린 이제 중졸이라고 해야되느냐’ 등의 ‘웃픈’ 농담을 주고받게 됐다”고 전했다.
충암고 학생들이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공간도 폐쇄됐다. ‘충암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은 내년 3월 4일까지 임시 중단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공지에는 “이 계정은 계엄령 및 충암고 이슈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교 측은 최근까지도 항의성 전화가 빗발친다고 했다. 충암고 관계자는 “아직까지 항의하는 민원 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면서 “어떤 전화가 올 지 모르니 오는 전화들을 다 받을 수 밖에 없다. 8명의 행정실 직원들이 최대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복 임시 자율화 외 학교 차원에서 낸 가정통신문이나 별도의 공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충암고는 지난 6일 학생들이 등하교 중 혹시 모를 폭력이나 조롱 등의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학교장 명의의 ‘등교 복장 임시 자율화 안내’ 가정통신문을 학생·학부모에게 보낸 바 있다. 가정통신문에는 “최근 국가의 엄정한 상황과 관련해 본교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등하교 중의 학생들이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을 예방하고자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근 경찰이 충암고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기도 했다.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에 대한 우려로 학교 측이 서울 서부경찰서에 ‘등하교 시간 순찰 강화’를 요청하면서다.
전날에는 이윤찬 충암고 교장이 국회 교육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 교장은 “계엄령 선포 및 해제 이후 사흘간 약 120통의 항의전화가 학교로 왔다”면서 “‘학교 이름을 계엄고로 바꿔라’, ‘학교를 폭파해라’ 등의 내용이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