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대목 특수 사실상 실종
환율 급등·K디스카운트 작동 우려
지난 8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계엄 사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 |
정국 혼란 속에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탄핵이 무산되며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경기 침체와 더불어 대내외 경제여건은 여전히 암울하다. 여기에 국정 전반까지 사실상 마비되며, 중기·소상공인은 “더 이상 버틸 도리가 없다”며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할 지경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기·소상공인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어디까지 이어질 지 모를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국정 운영은 ‘시계제로’ 상황이 됐다. 국회에 발 묶인 예산안은 정쟁 속에 처리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민생경제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잇달아 발표했던 중기·소상공인·자영업자 관련 각종 대책 역시 제대로 작동할 지는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며 글로벌 무역 질서의 재편도 가시화되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이 같은 안팎의 복합위기에 대처할 여력이 없는 바닥경제는 그 여파를 고스란히 몸으로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처럼 서민경제에는 벌써부터 소비심리 위축이 뚜렷하다. 연말연시, 성탄절 등을 목전에 두고 내수가 활기를 띌 것으로 기대하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한숨을 짓는 이유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 사장은 “송년회, 연말모임 등을 예약했던 손님들의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며 “연말 예약 건수가 가뜩이나 작년에 비해 줄었는데, 그나마 잡혔던 예약까지 감소하며 매출이 반토막나게 될 판”이라고 걱정했다.
소상공인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손님이 제발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며 “연말연시가 그나마 소비를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데, 올해는 심리적 위축으로 그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고 전망했다.
제조·수출 중기에는 환율 상승이 위협적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일 계엄령 선포를 전후해 한때 1440원대까지 뛰었다. 일각에선 1500원선으로 오를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환율 상승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 수출 가격 경쟁력의 이점은 상쇄될 수 밖에 없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제조 중기 대표는 “일반적으로 수출의 경우 6개월 전에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맞춰 원자재를 해외서 들여오게 된다”며 “원자재 도입 계약 당시 환율이 1390원대 정도였는데 지금 환율이 1440원까지 올라가면 오히려 수출을 할수록 환차손이 발생하고 채산성이 악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해외 시장에서 ‘K’로 상징되는 한국 제품의 프리미엄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계엄 선포와 탄핵 시도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되며 한국의 이미지는 정정 불안국가로 낙인찍히게 됐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해 중소·벤처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며 “경제인 입장에서는 경제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 게 중요하다. 의회나 행정부가 정쟁을 떠나 이 점을 최우선에 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