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합동 사실상 ‘공중분해’ 반도체·차·조선 수출 직격탄

정부 기능 약화 트럼프 2기 협상 공백 우려
美 통상압박 노출된 기업들 고심만 깊어져
세일즈 미팅도 줄줄이 취소…수주 악영향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개된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치리스크가 커지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코리안 패싱’ 및 수주 공백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축소 및 수입품 관세 부과를 공언한 가운데 이에 대응할 우리 정부의 외교 협상력 약화가 당분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산업계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 국내 산업계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면 민관이 함께 신속하게 대미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탄핵정국의 장기화로 ‘정상 외교’가 멈춘 데다 부처 장관들도 대외 일정을 전면 중단하면서 어려워진 상황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향후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 및 제조업 부흥을 위해 강도 높은 통상 압박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미국 현지 투자기업에 제공하기로 했던 보조금 정책을 트럼프 정부가 완전히 뒤집거나 지원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선도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까지 수출규제 대상에 포함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미국발 대외 불확실성을 제어하기 위해 각 기업의 해외 대관조직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민관합동의 한 축인 정부의 기능이 사실상 멈추면서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한 좌담회에서도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 등 통상정책을 핵심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한 민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기민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자동차 업계도 이번 사태로 인한 글로벌 시장의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국내 자동차 업계의 연간 수출실적은 591억달러(약 84조6000억원)로, 3년 연속 최대 수출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당장 환율 급등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단기적으로는 수출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가 신뢰도 하락에 따른 해외 사업 여건 악화가 더 파급력이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정부 리더십까지 흔들릴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관세 부과와 전기차 보조금 축소 등 통상 대응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신뢰도와 신용등급이 하향되고, 이미지까지 나빠지면 현지에서 각종 계약 조건이 까다로워질 수 있다”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전반적으로 자동차 기업들의 해외 사업환경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산 수출도 정치적 리스크로 직격탄을 받을 전망이다. 방산 수출은 산업 특성상 기업과 정부 간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정부 간 거래인 만큼 대통령이 직접 세일즈에 나설 시 계약 성사 가능성이 크다.

K-방산은 최근 캐나다의 60조원 규모 잠수함 프로젝트 수주전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국정 공백으로 주도권을 빼앗길 상황에 처했다.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 방산 협력이 논의될 예정이었던 한-카자흐스탄 국방장관 회담도 취소됐다. 타결이 임박했던 폴란드 정부의 현대로템 K2 전차 추가 구입 계약의 연내 체결도 불투명해졌다.

방산 전문가인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K-방산 제품 경쟁력은 높지만 국정 공백이 계속 이어지면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국내 조선사들도 정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는 국정 공백에 따른 정치적 불안이 K-조선 수주에 당장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해외 선주사들이 발주를 넣을 때 조선사의 건조 능력뿐만 아니라 조선사가 위치한 국가의 정치적 상황도 고려하기 때문에 탄핵정국 장기화가 자칫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환경 규제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선주사들 입장에서는 규제에 맞는 선박을 제때 인도받는 게 중요해졌다”며 “우리나라의 선박 건조 능력은 변함 없지만 선주사들은 정치적 불안으로 선박 건조 일정에 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일·한영대·양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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