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규모 모임 자제 움직임도 지속
KDI, 국가 경제도 불확실성 지속 전망
11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거리가 한산한 모습. 강승연 기자 |
[헤럴드경제=전새날·정석준 기자] “저녁 영업을 시작해도 손님을 한참 기다려야 합니다. 가끔 들어오는 배달 주문밖에 없어요. 코로나도 끝나고 다시 경기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더 나빠졌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식당 점주)
내수 부진 속 계엄과 탄핵 정국이 맞물리며 외식 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연말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며 단체 손님 수요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원부자재값 인상, 인건비 부담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소비마저 얼어붙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헤럴드경제가 만난 소상공인들은 연말 대목을 날릴까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외식비 물가가 상승하며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치 이슈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 종로, 강남 등 주요 상권에서도 예약 취소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울 강남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자영업자 강모 씨는 “예년에 비해 예약 문의가 적게 들어온다”며 “저녁 시간이면 손님들이 식당에 가득 차야 하는데 두팀밖에 없지 않나. 경기가 안 좋은 것에 정치 이슈까지 겹쳐서 더 힘들어졌다”라고 토로했다.
윤덕현 서울시소상공인연합회장은 “코로나19나 과거 탄핵 때보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연말을 기대했던 업체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12월 매출이 예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라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코로나19 때 버금가는 지원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도 “작은 식당들은 예약보다는 손님들이 지나가다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라며 “연말이 대목인데 앞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사류보다는 삼겹살집, 호프집 등 술을 파는 업종 매출이 더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국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한 음식점 12월 예약 달력(오른쪽 사진)이 비어 있다. 들어온 일부 예약도 취소돼 수정펜 흔적이 남아 있다. 반면 11월 달력(왼쪽 사진)은 고객예약으로 꽉 차 있다. [연합] |
프랜차이즈 요식업체들도 상황을 지켜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아직 전월 대비 매출에 큰 변동은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정치적 불안정함이 장기화했을 때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앞서 외식업계는 이미 3분기에도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3분기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전망치 83.12보다 아래인 76.04를 기록했다. 1년 전(79.42)보다 경기동향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가 전망이 어둡다는 의미다. 이 중에서 주점업 경기동향지수는 70.69로 전체 외식업종 중 가장 수치가 낮았다.
aT는 “하반기 경제 상황은 고물가, 고금리와 같은 요인들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외식업의 경우 높은 체감 물가로 인해 소비심리가 지연되고 있다”라며 “코로나19 이후 연말 회식 및 모임이 감소하며 이전과 같은 연말 특수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한 음식점에 붙은 송년 예약 안내문. [연합] |
시민들도 연말 대규모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관가에서도 정국이 불안해지자 부서 회식을 먼저 취소하는 등 조심스럽다. 일부 공공기관은 계엄 사태가 발생한 이후 사실상 ‘회식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30대 공무원 이모 씨는 “국·실장급 위주로 지금 시국에 회식을 자제하고 행동을 조심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라며 “내부적으로 원래 예정된 저녁 약속은 다 취소했다”라고 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50대 박모 씨도 “공직 기강을 확립해야 하는 기간”이라며 “공식적인 공지는 없었지만, 부서장들이 알아서 부서원들에게 회식 자제 등 자기 관리를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어려운 경기와 혼란스러운 나라 상황 때문에 지인 간 송년 모임 등이 줄어든 것도 연말 분위기 실종의 큰 요인으로 꼽힌다. 3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코로나 이후 안 그래도 저녁자리 등 회식이 많이 사라진 분위기인데 이번에는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더 심한 것 같다”라며 “며칠 전 시청 인근 규모가 큰 횟집을 갔는데 손님이 한 팀밖에 없었다”라고 우려했다.
20대 직장인 문모 씨는 “앞으로 경제가 더 안 좋아질 것 같고 나라 상황도 어두운데 마냥 웃고 떠드는 자리에 나가는 게 맞는지 고민스럽다”라며 “연말 모임 가지기도 눈치 보이는 상황이라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라고 털어놨다.
전망도 어둡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동향 12월’에서 우리 경제 안팎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는 “상품 소비와 건설투자 부진이 지속되면서 내수 회복이 제약되는 모습”이라며 “서비스 소비도 숙박·음식업 등 주요 업종을 중심으로 낮은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서울 한 음식점에 붙은 단체석 안내문.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