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의원들 “물러나야”vs 친한계 “당대표가 비대위원장 임명”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김진·문혜현·김해솔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국민의힘이 또다시 사분오열하고 있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이 사퇴 의사를 표명했고, 의원총회에서도 지도부 총사퇴를 의결하면서 한동훈 대표 체제가 붕괴 절차에 들어갔다. 한동훈 지도부가 지난 7월 총선 참패 책임론도 딛고 화려하게 출범한지 5개월만이다
하지만 한 대표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드러내고, 친한계 인사들도 이를 지지하면서 분위기는 ‘당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진영 전체가 혼돈에 빠졌던 8년 전으로 돌아갈 위기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한 대표는 “저는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지만, 친한계를 포함한 최고위원 5인이 모두 사퇴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재적의원 3분의 2(72명) 이상’의 찬성으로 한 대표의 사퇴를 최종 의결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개표 결과는 총투표수 300표 중 가(찬성) 204표, 부(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다. 탄핵소추안의 가결정족수는 ‘재적의원의 3분의 2(200명) 이상’으로, 국민의힘에서 8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범야권 의석(192석)을 감안했을 때 이번 표결에선 국민의힘 의원 12명이 당론에 반하는 찬성표를 던진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앞서 공개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국민의힘 소속의 비윤계 안철수(4선·경기 성남분당갑) 의원과 김재섭(초선·서울 도봉갑) 의원, 친한계의 조경태(6선·부산 사하을) 의원과 김예지(재선·비례) 김상욱(초선·울산 남갑) 진종오(초선·비례) 한지아(초선·비례) 총 7명으로, 이들 외에도 5명의 추가 이탈표가 나온 셈이다.
본회의 산회 이후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는 친윤(친윤석열)계와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탄핵안 가결책임론이 터져 나왔다. 집권여당으로서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을 막지 못한 책임은 한 대표와 친한계를 향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정치신인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친한계) 비례들은 탈당하라” 등 거친 언사와 고성이 쏟아졌다. 한 대표가 의원총회를 찾아 “이번 사태는 다 예측된 것 아니냐. 탄핵이 안 될 것이라 생각하셨나”, “제가 투표 했습니까” 등 책임론에 반박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탄핵안 통과 시 최고위원직 사퇴’ 입장을 밝혔던 장동혁 의원은 한 대표가 의원총회를 떠난 직후 사의를 표명했고, 뒤를 이어 김민전·인요한·진종오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던졌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요건 중 하나인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 사퇴’가 발생한 것이다. 원외 김재원 최고위원까지 페이스북을 통해 사의를 밝히면서 최고위원 5인이 모두 물러났다. 당대표 비서실장인 박정하 의원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 대표의 사퇴’를 안건으로 진행된 거수투표는 재석한 93명 중 73명이 찬성하면서 의결됐다. 한 초선 의원은 “대표의 발언이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 같았다”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탄핵 가결의 책임을 지고 임기 이틀 만에 자신의 거취를 의원들에게 일임했으나 곧바로 재신임됐다.
정작 한 대표는 직무 수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의원총회를 빠져나온 직후 기자들을 만나 “저는 지금 이 심각한 불법 계엄 사태를 어떻게든 국민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라고 강조했다.
또 “조기사퇴를 비롯한 ‘질서 있는 퇴진’ 방안도 심도 있게 검토했고, 근데 그것이 대통령이 약속을 안 지켜서 무산됐다”라며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탄핵 가결이 불가피하다고 봤다”고 했다.
향후 국민의힘에선 당헌에 따라 권 원내대표의 당대표 권한대행 및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려는 친윤·중진그룹과, 당대표 권한을 유지하려는 한 대표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의원총회를 마친 직후 “지도부 체제는 월요일(16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라며 “당 지도부는 총사퇴를 결의했기 때문에, 한동훈 대표가 그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친한계 박상수 대변인은 “최고위원 4인 사퇴는 당대표 권한대행 또는 직무대행 발동 요건이 아니라 비대위 구성 요건”이라며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으로 당대표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당내 갈등은 원외에서도 표출되고 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20년 동안 국회에서 벌써 3번째 대통령 탄핵소추”라며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와 국정의 위기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이냐”라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한동훈 체제는 총사퇴해야한다. 소수 의석으로 거야에 맞서야 함에도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한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여권 대선 잠룡으로 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도 연일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 시장은 탄핵안 가결 직후 SNS에 “야당의 폭압적인 의회 운영에서 비롯된 비상계엄 사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당 지도부는 양심이 있다면 총사퇴하라”며 “찬성으로 넘어간 12표를 단속하지 못하고 이재명 2중대를 자처한 한동훈과 레밍(집단자살 습성이 있는 나그네쥐)들 반란에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반면 유승민 전 의원과 탄핵 찬성 입장을 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다른 입장을 내비쳤다.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참담하다. 헌정사의 불행”이라면서도 “우리 당은 이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보수의 재건에 나서야 한다”며 “탄핵 소추안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서로를 존중하고 분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도 SNS를 통해 “이제 시급한 일은 사회·경제적 안정”이라며 “여야를 넘어서 서민 경제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거국적 협력과 위기 극복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당의 화합과 수습을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