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탄핵 때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외환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대외신인도를 챙겨야 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윤경제연구소장)은 17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탄핵 정국 때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묻자 “원인과 배경이 다르다”며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외환경도 다르다며 그때는 우크라이나전쟁이나 중동전쟁도 없었고, 공급망 측면에서도 지금과 같은 애로가 없었다고 부연했다.
윤 전 장관은 글로벌 시대인 만큼 대외변수가 중요하다면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이 대내외로 국정 다방면에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총리 중심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고, 최상목 부총리도 브라이트(명석한)한 관료 출신이어서 잘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을 포함한 전직 장차관들은 하나같이 “정치는 둘로 갈렸지만 경제는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이유를 들며 여·야·정 소통 강화 등을 통해 경제와 민생 챙기기에 온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탄핵은 경제가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다”면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땐 천만다행으로 이듬해 1분기에 반도체 호황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성장을 견인했다”면서 “그러나 현재는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힘들다”고 진단했다.
윤증현 전 장관의 진단도 비슷했다. 그는 “세계는 여러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고, 미국에선 국제 사회가 걱정하는 리더십이 등장했다. 글로벌 공급망도 붕괴하고 있다”면서 “지금이 더 위기라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중국의 경기 호황, 2016년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외부 순풍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극심한 내수부진에 관세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내달 출범을 앞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대 경제 수장인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각 ‘퍼펙트 스톰(복합 위기 상황)’이 오고 있다”면서 “과거 성장 방식인 추격형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첫 번째 파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어려운 대외 여건이 두 번째 파도, 국내 정치적 불안이 세 번째 파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외환위기와 차원이 다르게 지금은 내부적으로 더 곪고 오래 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과거 탄핵 때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는 현상 인식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위기 속에서 민생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여·야·정 협치를 통해 경제를 살려 국민 불안을 줄여야 한다는 데로 전직 경제팀 리더들의 제언은 모아졌다. 또 이럴 때일수록 민관이 적극적으로 투자해 산업의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일호 전 부총리는 “정국의 변화는 외생 변수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잘하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다”며 “외생 변수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시절 최장수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구윤철 서울대 특임교수는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크든 작든 위기가 없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면서 “한국 경제는 오히려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함으로써 더 큰 국가 발전을 이루는 계기로 삼았던 경험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기 극복 경험이 많은 우리 경제는 결코 이대로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정치적인 일정과 무관하게 국가 역량을 총집결해 당면한 경제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높은 국운 융성의 기회로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외환 안정이 우선적으로 돼야한다”면서 “당장 석유나 가스 수입 가격이 올라가고 환율과 대외신인도 때문에 외채 이자 상환 등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결국 서민들은 살기 어려워진다”면서 “첫째 외환시장 안정, 그 다음 물가에 주력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문승욱 전 장관은 “민간과 정부의 협업을 통해 투자를 늘려야 한다”면서 “산업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이어 “새출발 시점이 오고 있으니 민간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정부는 연구·개발(R&D), 인력 개발 등을 지원하는 분위기 조성도 챙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문 전 장관은 “5년 혹은 10년 뒤 중국 등에 따라잡힌 기술 등을 메꿀 수 있는 기술과 산업을 준비해야할 시기”라며 “이러한 기업이 있어야 미국과 중국 등 ‘편가르기 상황’이 가중되는 분위기에서 우리가 목소리를 유지하고 레버리지로 삼을 수 있다”며 위기 속에서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현 전 부총리도 산업 정책 지체를 우려하며 “정부와 기업이 일체가 돼야 하는 시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중요한 시기다. 탄핵기간 6개월 손 놓고 있으면 회복하기가 정말 어렵다”면서 “3각 파도를 어떻게 넘을지 고민하고 정치권을 설득해야 한다. 한 정파에 국한된게 아니라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백척간두의 상황”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