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서 다시 쓰는 문명역사②카라한,착막,사이불츠 현장

세계신석기학회 1천명 학자 탐방


강인욱 교수


사이부르치 유적[이하 사진 강인욱 교수 촬영]


괴베클리 다음으로 카라한 테페를 방문했다. 괴베클리가 이미 정비가 된 유적이라며 흙먼지 풀풀 풍기는 한참 발굴중인 카라한테페는 괴베클리에서 풀리지 못했던 여러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유적이었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최고의 조각품을 만들어낼 기술이 있었고 사람들은 절도있는 규범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제단에는 다양한 돌로 만든 그릇과 뚜껑들이 모여있었다. 마치 요즘에 제사를 지내면 가지런히 그릇들을 맞추어 놓는 것처럼 12000년전 사람들도 사람들의 서열에 맞추어서 제사를 지낸 셈이다.

카라한테페 질서정연한 제기들


비슷한 현상은 그 다음에 답사한 착막테페(Cakmak Tepe)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거대한 집자리의 바닥을 파서 돌그릇을 놓을 수 있는 컵홀더가 발견되었다. 아마 가족들은 각자의 위치를 정해놓고 그 위에 자신의 그릇을 놓고 여러 의식을 했다는 뜻이다.

대홍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언덕 위에서 수백명이 함께 살아야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후의 변화, 그리고 많아진 사람들로 자칫하면 무질서와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뜻을 모으고 함께 제사를 지내면서 사회를 만들어가야 했었다.

최근 카라한테페에서도 석인상을 비롯한 여러 유물이 발굴되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지만 정작 튀르키예의 고고학자들은 신중하게 천천히 발굴을 하고 있었다. 한번 삽으로 뜨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발굴이니, 세계적인 유적에서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카라한테페


당연한 선택이지만 설명을 들으며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유적이 될 수 있었던 중도 레고랜드 유적의 3천년전 청동기시대 1200개 주거지와 200개 고인돌을 단 몇 년만에 발굴해 치워버리고 그 위에 놀이동산을 세운 우리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연구로 세계에 어필하는 튀르키예 고고학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사이불츠(Sayburc)유적은 마을 한가운데에서 집들 사이에서 발굴중이었다. 공교롭게 마을이 유적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어떤 집이 집을 개축하다 집 밑에서 곰인간의 조각상을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사이불츠(영어식 사이부르치)유적


사방이 평지인 지역에 완만하게 솟아오른 언덕인 이 유적은 1만년의 사이를 두고 똑같이 사람들이 마을로 선택할 정도로 살기 편했던 지역이다. 유적들 사이로 양과 염소가 지나가고 아낙네들은 물을 뜨고 노인들은 앉아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1만년의 사이를 두고 교차하는 비슷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마치 타임슬립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착막테페 유적은 위성을 통한 원격 지표조사로 그 존재가 확인되었고, 방금 조사가 시작된 생생한 유적이었다. 그 연대는 괴베클리보다 500년정도 빠른 점이 밝혀졌다.

유적의 형태도 많이 달랐다. 거대한 T자형 건축물이나 화려한 동물무늬도 없었으니 거대한 사원이 출현하기 바로 직전 단계이다.

카라한테페 유물


발굴자인 파트마 샤힌(Farma Sahin)교수는 거대한 건축물과 동물문양은 나무기둥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렇다고 해도 나무에 새기는 것과 채석장에서 돌을 가져와 새기는 것은 완전 다른 기술이다.

약 500년간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그들은 거대한 돌을 세울 수 있었을까?

빙하기가 끝나는 거대한 변혁의 시기에, 착막테페 보다 500년 늦은 괴베클리와 주변의 사람들은 과감하게 종교와 거대한 사원을 지으면서 그 위기에 대응했다. 보다 정교한 기술을 축적하고 이를 발휘했다. 그 덕에 2~3천년 뒤에 근동지역의 비옥한 초생당 지대에서는 거대한 마을들, 그리고 도시와 국가로 이어지며 인류문명의 역사가 태동되었다. 대홍수의 시대에서 괴베클리 사람들이 거대한 사원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차크마크테페의 태양


지금 우리에겐 AI라는 큰 혁명이 왔다. 2년도 안된 사이에 우리에게 스며든 변화는 아주 빠르게 퍼지고 있다. 12000년 전 괴베클리가 쏘아올린 세계 문명의 빚은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이어지는 혼란한 시기, 그들은 공동의 노동으로 극복했다.

거대한 변혁의 물결이 다가오는 21세기의 지금 우리에게도 또 다른 괴베클리의 문명같은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대홍수의 기후 변화를 극복하면서 협력하여 만들어낸 문명의 흔적에서 지금의 희망을 찾아본다.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 정리=함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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