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보다 급한 게 개헌…역사적 비극 막아야 한다” [정치권 원로들에 듣는다]

전직 국회의장·부의장·당대표 인터뷰
여야 원로들 현행 대통령제 지적…“바꿔야”
문희상 “모든 문제,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
김형오 “대통령 뽑으면 제왕적 권한 행사”
황우여 “개헌 너무 두려워 할 것이 아니야”
이석현 “현 제도, 또 시끄럽지 않을 보장 없어”


왼쪽부터 문희상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황우여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 [연합, 이상섭 기자(황 전 위원장 사진)]


[헤럴드경제=안대용·주소현·양근혁 기자] “머리가 혼란스럽다.”(한 전직 국회의장)

중진 의원을 지냈고 국회의장으로 입법부 수장을 지낸 정치 원로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할 정도로 2024년 12월 정국은 어지럽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11일 만인 지난 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파면 여부 심리에 착수했는데 재판 기간 동안은 물론 결론이 나온 후에도 한동안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정국 혼란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헌정사상 세 번째이면서 불과 8년 만에 다시 벌어진 ‘대통령 탄핵 정국’을 두고 국회의장·부의장, 당대표를 지낸 다선 중진 출신의 정치 원로들은 현행 제도의 불안정성을 공통적으로 지적하면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자체를 손봐야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역사적 비극을 멈추고 정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같았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6선 의원 출신의 문희상 전 의장(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18일 헤럴드경제에 “또 한 번 국민들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뤄졌는데 헌법을 바꿔 제도화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역사가 또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문제의 시작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문 전 의장은 이번 윤 대통령 탄핵 상황을 두고 “우리 대한민국 정치가 부재, 붕괴, 어떻게 보면 궤멸 상태였다”며 “방법은 정치의 회복, 복원 밖에 없는데 그걸 주도해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제에선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대통령이 남탓만 하다가 집권한지 2년반이 지났고 탄핵소추가 되고도 전부 남탓 아닌가”라며 “힘을 합쳐 정치를 복원하려고 애를 쓰진 않으니 국민이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18대 국회 전반기 의장을 지낸 5선 의원 출신의 여권 원로 김형오 전 의장도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이런 일들은 정치 제도의 불안정에서 오는 것”이라며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 때문인데,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놓으면 전부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이 전부 불행하고 비극적으로 끝났잖나. 이걸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모든 대통령들이 다 불행했는데도 ‘나는 다를 것이다’, ‘나는 잘할 것이다’라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대통령) 후보들 때문에 대통령제를 못 고친 것”이라며 “대통령제에 관해 많은 문제점이 있고 그 결과로 튀어나온 게 탄핵”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를 지내고, 올해 4월 총선 이후 전당대회까지 여당을 이끌었던 5선 의원 출신 황우여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한 개헌은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주장해왔다”며 “입법 독주가 시작될 때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외에 아무 방법이 없고, 거꾸로 대통령이 독재한다든지 잘못할 때 5년 임기를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개헌을 너무 두려워할 것이 아닌 게 독일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개헌을 한다. 미국도 몇 년에 한 번씩 개헌이 이루어지는 형태”라며 “어떤 때는 부분적 보완 개헌도 하고 우리 같이 심각할 때는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도 해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19대 후반기 부의장을 지낸 6선 의원 출신의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전 새미래민주당 비대위원장)도 “대통령이 황제적 권한을 갖는 지금 우리 체제가 문제”라며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부의장은 “지금과 같은 헌법 체계에서 대통령을 뽑으면 또 시끄럽지 않을 거라는, 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 빨간불이 켜져 있는 모습. 임세준 기자


원로들은 당장 다음 대선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개헌 자체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과거 국회 차원에서 ‘통치구조’ 관련 개헌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했던 만큼 여야 정치권의 의지만 있다면 오래 걸릴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현직 대통령이 또다시 탄핵심판을 받게 된 상황에서 파면 여부를 가리는 일은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정치권은 개헌 논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전 부의장은 “지금 대선이 급한 것이 아니라 헌법을 바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며 “개헌을 추진하면서 또 한편으론 내란 책임에 대한 문제를 헌재에서 판단하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부의장은 “과거 지난 국회에서 개헌안을 거의 만들어놨다”며 “빨리 손질을 해서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키면서 민주적 요소를 반영해 개헌하고 대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선 개헌 후 대선”이라고 제언했다.

김 전 의장도 “지금이 적기”라고 했다. 이어 “미국은 건국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제를 하면서 대통령 탄핵을 몇 번 추진했지만 실제 탄핵(파면)된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잖나”라며 “미국의 체제는 상당히 권력 분산이 잘 돼 있고 안정돼 있고 역할 분담이 철저히 돼 있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은 “역대 국회에서 만들어 놓은 국회안이 있다. 결단만 내리면 되는 것”이라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고 채택할까 말까 투표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야 정치권이)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어느 정도 합의가 돼 있지 않나”라며 “대통령제도 권력을 과감하게 지방분권을 강화하거나 책임총리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하거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황 전 위원장은 “대안으로는 독일식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라든지 이원집정부제 정도로는 완화시켜야만 된다”며 “우리나라 규모의 선진국들은 거의 내각제를 한다”고 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관련해선 “근본적 해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문제를 그냥 좀 연장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줄이되 재선을 통해 중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헌법 70조는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의원내각제라고 불리는 내각책임제에선 내각이 의회에 의해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의회 다수 의석을 보유한 정당이 내각(행정부) 구성권을 갖고, 의회가 해산하게 되면 각료들이 사퇴하게 된다. 의회가 내각 불신임권을, 내각이 의회 해산권을 각각 갖는다. 독일의 경우는 내각 수반인 총리에 대해 후임 총리를 선출해야만 현 총리를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연방대통령은 국가 원수 역할을 수행하지만 행정 수반 권한은 갖지 않는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결합 형태로, 평상시엔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만 존재하고 총리가 행정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비상시엔 대통령이 행정권을 쥐고 행정 수반 역할을 하는 제도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많은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임세준 기자


나아가 개헌을 통한 제도 개선 외에 심화된 팬덤정치, 진영정치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한 전직 의장은 “지금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진영정치 팬덤정치”라고 진단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가장 큰 질병 같은 게(팬덤정치) 번지고 있다. 미국도 그렇다”며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게 우리나라”라고 했다.

또 “정치와 나라를 위해 상대를 같이 경쟁하고 협의하는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생각들을 한다”며 “민주주의 지도지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상호 관용이고 그게 지금 필요한 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서로 상대방을 죽이는 정치를 원하는 게 아니다”라며 “상대와 대화하고 타협해서 타협안을 만들고 그래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야권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 전 의장은 “야당의 색깔이 다양하고 민주적이고 활기차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며 “이러면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된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은 “야당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이후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영국에 갔던 1년을 제외하곤 야당 대표 생활을 했다. 의회주의를 철저히 지키겨로 애를 썼고, 웬만한 큰일에 협조하면서 거꾸로 미래에 대한 비전에는 야당이 선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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