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미국 환경단체 벌룬즈 블로우(Balloons Blow) 홈페이지 갈무리]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지난 14일 오후 5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의결됐다. 환호성과 함께 돌연 하늘을 가득 채운 게 있다. 바로 수백 개의 풍선 더미다. 수백 개의 풍선은 하늘로 올라 금세 자취를 감췄다.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일. 어찌보면 익숙했던 풍경이다. 축제 때에도, 기념일에도 풍선은 늘 등장한다. 그런데, 저 풍선의 이후 여정은 어떻게 될까.
당시 하늘로 사라지는 풍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는 한 집회 참여자는 “의도와 달리 하늘에 쓰레기를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최대한 동물들에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하늘에 탄핵소추안 의결을 기념하는 풍선이 날아가고 있다.[X(구 트위터) 갈무리] |
하늘로 날아간 풍선들은 어떻게 될까. 헬륨 가스로 채워진 풍선은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내부 가스양에 따라 18~37km에 도달한 뒤 터진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기압이 낮아질 경우, 내부 기체의 부피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후 풍선 잔해는 바람에 실려 바다나 지상으로 떨어져, ‘쓰레기’가 된다.
날아간 풍선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적지 않다. 대부분 풍선은 플라스틱 소재로, 분해되는 데만 많게는 수백 년이 소요된다.
일각에서는 생분해성 고무(라텍스) 성분으로 풍선을 만들어 날리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환경단체 벌룬즈 블로우(Balloons Blow)에 따르면 소위 ‘친환경’으로 불리는 생분해성 풍선 또한 분해되는 데 최소 4년 이상 소요된다.
2017년 울산시 동구에서 날린 풍선을 발견한 일본 가가와 현 미토요 시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사이토 유다 군이 풍선에 매달려 있었던 소원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울산시 동구 제공] |
아울러 풍선이 날아가는 거리는 ‘예측 불가’다. 바람과 기상 상황에 따라 짧게는 100m에서 길게는 수천km까지 날아갈 수 있다.
널리 회자되는 사례가 하나 있다. 지난 2017년 울산 동구에서 해돋이 기념으로 쏘아 올린 풍선을 일본 가가와현 미토요시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발견했다. 울산과 일본 미토요시의 직선거리는 약 450km에 달한다. 2009년에도 울산 대왕암공원 해맞이 축제 때 날린 풍선이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서 발견됐다. 바다까지 건너 날아가는 일회용 풍선 쓰레기다.
심지어, 호주 한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GPS장치를 일반 파티 풍선에 삽입해 동선을 추적하니 8주간 11만80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했다는 결과도 있었다. 지구 세 바퀴 반에 달하는 거리다.
미국 한 해안에 떨어진 라텍스 풍선 잔해. 해파리, 오징어 등과 비슷한 모습이다.[미국 환경단체 벌룬즈 블로우(Balloons Blow) 홈페이지 갈무리] |
더 큰 문제는 동물들이 떨어진 풍선을 먹거나, 풍선 쓰레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데에 있다. 특히 국내에서 날린 풍선들의 경우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삼면이 바다로 된 특성 때문이다.
거북이 등 해양동물이 풍선 잔해를 먹이로 착각해 섭취할 경우, 소화기관에 들러붙고 배출되지 않아 사망 원인이 된다. 풍선에 달린 끈이나 리본 등도 목을 휘감아 질식사할 위험도 크다.
새들에도 풍선은 큰 위협이다. 호주 과학 연구기관 CSIRO가 2019년 바닷새 1733마리의 사인을 조사한 결과, 풍선과 같은 연성 플라스틱을 섭취할 때 사망률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람이 빠진 풍선은 오징어, 해파리와 형태가 비슷해 바닷새들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다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풍선 쓰레기가 새의 몸을 휘감은 모습.[미국 환경단체 벌룬즈 블로우(Balloons Blow) 홈페이지 갈무리] |
초기에 풍선 날리기는 과학 실험 용도로 주로 사용됐다. 그러나 오늘날엔 기념 행사나 축제 이벤트로 흔히 이용된다. 국내에서는 신년 해맞이 행사 등을 위주로 다수 풍선에 소망을 담아 날리는 방식의 이벤트가 다수 진행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풍선을 날리는 게 법적으로 규제된 국가가 적지 않다. 영국은 2017년부터 50여개 지자체에 풍선 날리기를 금지하도록 조치했다. 호주 일부 지자체는 최대 5000호주달러(한화 약 455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미국의 다수 주에서도 의도적인 풍선 방출을 금지하고, 벌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시민들이 새해를 기다리며 풍선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헤럴드DB] |
국내에선 아직 규제 조항이 없다. 다만, 최근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풍선 날리기를 자제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각종 환경단체의 문제 제기가 이어진 결과다.
지난 2019년 12월 경기도는 도내 31개 시군과 산하기관 모든 행사에서 풍선 날리기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제주도도 2020년 신년 행사 당시 풍선 날리기 이벤트가 논란이 되자, 산하 부서 등에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다수의 지역에서 풍선 날리기는 어김없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1월만 해도 강원도 양구, 전남 완도, 충북 단양 등 적어도 10여곳의 지자체에서 풍선 날리기 행사를 진행했다.
당장 보름 앞으로 다가온 내년 해맞이 행사에도 전국 곳곳에선 어김없이 풍선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한 호텔에서 새해 풍선 날리기 행사를 홍보하고 있다.[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
이와 관련, 국내에서도 법적 규제를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8월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풍선 날리기’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엔 허가 또는 승인을 받지 않고 풍선류를 쏘아 올릴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정국에 따라 상임위원회 개최 등이 미뤄지고 있다”면서 “해당 법안도 심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자체적으로 내년 1월 계획된 각종 풍선 날리기 행사를 막고, 여타 이벤트로 대체를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이날 환경부와 17개 시·도 지자체에 ‘풍선 날리기 행사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김정덕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실제 행사가 다수 이뤄지는 1월 1일 이전까지 현황 파악 및 공문 전달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