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도 자스민도 지니도 원한 건…그 무엇보다 찬란한 ‘자유’ [고승희의 리와인드]

디즈니 뮤지컬 ‘알라딘’ 한국 초연

먹을 것 많은 단연 ‘소문난 잔치’

‘진정한 자유’ 메시지도 담아내

 

뮤지컬 ‘알라딘’ [클립서비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끝도 없이 펼쳐지는 모래사막 위, 이제부터 신비한 모험이 시작된다. 알록달록한 비단옷이 물결을 이루고, 이국의 정취를 품은 시장 한가운데서 홀린듯 춤을 추다 알라딘과 자스민이 ‘서로’를 알아본 곳.

“아득히 머나먼 사막 한가운데, 아주 신비한 곳이 있어, 세상 사람들이 모이는 곳 아라비안나이트, 꿈을 꾸는 듯한 마법 가득한, 신비로운 땅 느낄 수 있어.” (‘알라딘’ 넘버 ‘아라비안 나이트’ 중)

수천의 꿈과 수만의 갈망이 뒤섞인 곳. 이곳에서 지니는 묻는다.

“자, 그대들은 무엇을 찾아 이 머나먼 곳까지 오셨나. 사랑? 성공? 자유? 아님 그 모든 것이 이뤄질 수 있는 위대한 마법?” (‘알라딘’ 지니 대사 중)

뮤지컬 ‘알라딘’(2025년 6월까지ㆍ샤롯데씨어터)이 상륙했다. 내년까지 이어질 뮤지컬계 최고 기대작이다. 화려한 볼거리와 대중적 노래, 초호화 캐스팅으로 무장해 일찌감치 전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 치열한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전쟁을 불러온 디즈니의 명작이다. 2011년 미국 시애틀 초연 이후, 2014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스테디셀러이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대엔 한국의 뮤지컬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명실상부 업계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김준수를 필두로 박강현 서경수가 알라딘으로, 정성화 강홍석 정원영이 지니로 힘을 실었다. 자스민엔 민경아 최지혜가 이름을 올렸다. 배우 이성경은 이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했다.

지난달 22일 개막, 3주차에 접어든 ‘알라딘’은 명성대로 ‘소문난 잔치’였고, 먹음직스럽게 잘 차려진 음식들이 많았다. 뮤지컬은 디즈니의 ‘성공 공식’을 명민하게 풀어냈다. 어렵지 않은 스토리텔링, ‘시각 충격’에 가까운 볼거리, 귀에 익은 선율과 쉴 새 없는 군무의 향연, 눈을 뗄 수 없는 마법이 적재적소에 녹아 들었다.

뮤지컬 ‘알라딘’ [클립서비스 제공]

150분(인터미션 포함) 동안 떠나는 알라딘과의 여정은 구름 위에 앉은 것처럼 내내 일렁거린다. 1막의 명장면은 ‘램프의 요정’ 지니 등장신. 알라딘이 램프를 찾아 들어간 호랑이 동굴의 문이 열리면 관객은 일순 탄성을 지른다. 특수효과 하나 없이 ‘한 땀 한 땀’ 구현한 눈부신 황금 보물과 수천 개의 크리스털이 매달린 의상이 관객을 향해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마법처럼 등장한 지니가 ‘나같은 친구’(Friend like me)를 부르며 10분 넘게 무대를 휘젓는 장면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원맨쇼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그러다가 이내 30명의 배우들이 총출동해 완벽한 군무를 선보이면 지니의 마법에 흠뻑 빠지고 만다. 고퀄리티 물량공세의 환상적인 ‘쇼 뮤지컬’을 보는 기분이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명넘버인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의 등장신은 디즈니의 고심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마법 양탄자를 타고 별들이 수놓은 새까만 하늘을 날아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브 공연에선 무대 장치와 어두운 배경으로 ‘마법 양탄자’ 장면을 구현했다. 아슬아슬하게 떠올랐지만,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의 하모니는 모두에게 저마다의 꿈을 꾸게 한다.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후렴의 영어 가사 ‘어 홀 뉴 월드’는 ‘별을 넘어’로 치환됐다.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가 화음을 넣어 ‘별을 넘어’를 부르자,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던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비록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구현하는 양탄자의 날쌘 공중 부양을 볼 순 없지만, 무대기술을 통한 최고치의 동화를 마주하는 장면이다.

볼거리가 많은 뮤지컬은 종종 함정에 빠진다. 빈약한 서사 때문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이야기는 자칫 유치해지기 십상이다. ‘알라딘’은 영리하고 유쾌한 화법으로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다양한 연령대를 타깃으로 한 만큼 쉽고 명확한 권선징악 구조를 가지면서도 메시지 전달에 총력을 기울였다. ‘선한 남주’ 알라딘과 그의 수호천사처럼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 아름다운 공주 자스민의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다. 세 사람의 여정이 쉬울 리가 없다. 선남선녀가 사랑을 이루고, 지니가 원하는 삶을 찾기까진 역경이 따른다. 시도 때도 없이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넘보며 음모와 술수를 일삼고, 어진 술탄을 조종하려는 악인 자파의 역할이 막중한 뮤지컬이다. 주인공들의 고난이 커질수록 응원의 함성도 거세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힘을 발휘한 것은 적절한 한국화다. 절묘하게 트렌드(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유행어 차용한 대사 ‘이븐하게 구워주세요’)를 타면서도, 공연장이 위치한 장소성(잠실역 3번 출구, 시그니엘)을 가져오며 ‘한국식 유머’를 녹였다.

뮤지컬 ‘알라딘’ [클립서비스 제공]

진정한 명작은 시대에 따라 달리 읽힌다. 4개 대륙에서 약 2000만 명의 관객과 만나는 동안 세 캐릭터는 시대마다 변화했다. ‘오늘의 옷’을 입고 ‘여기의 관객’과 소통해온 ‘알라딘’이 지금 한국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자유’다. 뮤지컬은 사실 시작부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자유’라고 답하며 관객을 이끈다.

세 사람이 찾는 자유는 저마다 다르다. 지니는 부와 권력을 만들어내면서도 램프에 갇힌 삶에서 벗어날 ‘자유’를 꿈꾸고, 이슬람 제국의 ‘최고 존엄’ 술탄의 딸인 공주 자스민은 시대가 규정한 ‘전통과 법도’에 가로막힌 삶을 벗어난 주체적인 여성으로 저항하는 ‘자유’를 갈망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 가난한 신분을 감추고 왕자로 가장했지만, 알라딘은 ‘진정한 나’로서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간다.

우리가 꿈꾸는 ‘자유’란 무엇일까. 모든 주제의 결론마다 ‘자유’를 외치며 ‘자유의 세계’에서 첨벙거리면서도 정작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려 했던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24년 12월, 대한민국에 ‘알라딘’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극히 보편타당하고 순수하다.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한 건 자유”라는 지니의 대사는 언제나 유효하다.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계에서의 자유다.

자유를 노래하고 연기하는 세 배우는 초연작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결과는 합격점이다.

영화 더빙버전에서도 지니를 연기한 정성화는 관객 조련사와 다름 없다. 뮤지컬의 시작부터 끝까지 ‘알라딘’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다. 지니와 정성화를 넘나들고, 이슬람과 서울 잠실을 오가는 현실 유머마저 그는 ‘지니’였다. 뮤지컬계 톱스타 김준수도 모처럼 유쾌해졌다. 김준수의 ‘본캐’를 보는 듯한 끼부림이 알라딘으로 적당히 스몄다. 가장 완벽한 자스민 공주의 모습을 한 이성경의 첫 도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대극장 주연을 맡은 첫 무대에선 그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첫 번째 넘버를 부를 때 생생히 떨려오는 목소리에 객석마저 조마조마한 기운이 감돌았다. 제작사는 “뮤지컬을 너무 사랑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떨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배우는 배우다. 장면 장면이 넘어갈수록 안정감을 찾자, 대체불가한 ‘자스민 미모’로 관객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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