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서해호(誓海號), 바다에 맹세하다


지난 11일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개관식에 초대받아 전시실을 둘러보던 중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눈에 띄었다. 이충무공전서에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몽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이순신 장군이 진중에서 읊은 ‘진중음(陣中吟)’이라는 오언율시가 수록돼 있는데, 나라를 위한 장군의 비장한 각오를 읽을 수 있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誓海魚龍動)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盟山草木知)’라는 부분이다.

최근 국립항공박물관의 역사적 항공기 복원사업으로 전시실에 새롭게 선보인 항공기 서해호(誓海號)가 떠올랐다. 서해호의 이름은 위에서 인용한 이순신 장군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서해호는 우리나라 해군이 최초로 개발한 국산 항공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953년 해군은 신형 수상 정찰기 개발 계획(SX ; Seaplane eXperimental)을 수립하고 진해의 해군공창에서 엔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자체 설계하여 제작했다. SX-1 서해호는 기체 전체가 물에 뜨는 비행정(飛行艇, Flying boat)으로서 1954년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길이 10.08m, 너비 7.92m, 높이 2.55m, 무게 950kg, 최대속도 203km/h, 항속거리 500km이고 엔진은 라이커밍사의 O-435를 사용했으며 탑승 인원은 2명이다.

당시의 경항공기와 유사한 골조에 기체의 하단은 물 위에서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보트의 밑바닥과 같이 제작했고, 엔진은 수면과 가장 먼 기체의 상단 조종석 위에 설치하여 프로펠러를 작동하게 했다.

서해호 개발 이후 해군은 1955년 육상 항공기 SX-2를 개발하고, 1957년에는 쌍발비행정 SX-3 제해호(制海號)를 시험비행 했으며, 1959년에는 수상기 SX-5 통해호(統海號)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서해호보다 앞서 1951년에는 해취호(海鷲號)를 제작했다. 바다수리라는 뜻을 가진 해취호는 미군의 T-6 텍산 훈련기 기체에 플로트(Float)를 장착해서 만든 수상기(水上機, Seaplane)이자 해군이 보유한 첫 항공기였지만 진정한 의미의 국산 항공기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만든 국산 1호 항공기는 공군의 부활호(復活號)다. 부활호는 1953년 개발됐고 1960년대 자취를 감췄으나 2004년 기체의 골조가 발견돼 복원작업을 거쳐 국가등록문화유산과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지정된 소중한 항공유산이 됐다. 반면, 서해호를 비롯한 해군이 개발한 항공기들은 이름만 남긴 채 역사 속에 잠들어있다.

박물관의 서해호 복원사업에 참여한 에어로솔루션코리아의 이동건 연구원에 따르면 부활호와 서해호는 개발시기를 비롯해 닮은 꼴이 많다고 한다. 부활호의 개발과 제작, 복원 과정에 이원복 선생(1926~2021)이 있었다면, 해군 항공기들의 개발과 제작에는 조경연 선생(1918~1991)이 있었다.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재조명 돼야 한다. 특히 서해호와 부활호는 우리나라의 초창기 항공공학사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해취호·서해호·제해호·통해호…, 그 이름들을 찾아내고 기억하고 호명하는 일이 그들을 다시 하늘과 바다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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