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사 충실의무 확대, 기업경영 법원에 맡기는 꼴”

민주당, 상법 개정안 정책 토론회
“개정시 이사 상대 소송 폭증할것”


경제계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총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거센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주주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면, 주주가 이사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등 손해배상청구와 배임 고소·고발이 폭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한 이사의 책임이 가중되며 인수합병(M&A)나 신규투자 등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도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9일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정책 토론을 진행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사회를 맡은 이번 토론회에는 경영계에선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형희 SK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투자자 측 토론자로는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 윤태준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 연구소장 등이 자리했다.

앞서 민주당은 11월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이익을 추가하는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정하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문화하는 것이 골자다. 충실 의무를 현행법상 회사뿐 아니라 일반 주주로까지 확대해 일반 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경제계는 회사의 주요한 경영적 판단이 고소·고발로 이어질 수 있단 점에서 “기업 경영을 법원에 맡기는 꼴”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현행법상으로도 주주대표소송 등 이사의 경영상 행위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주주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면,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폭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배임 고소·고발도 급증할 수 있다. 현재도 배임죄 기준이 불명확한데, 상법 개정 시 이사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여겨져 배임 고소·고발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단 점에서다.

경제계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기업들은 이사회·주주총회 등의 승인을 거쳐 M&A나 신규투자 등을 결정한다. 이런 가운데 이사의 책임이 더 무거워지면 M&A나 신규투자 등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 주주이익 보호의무 등이 불명확해 주총 특별결의에 따른 M&A 결정도 사후에 경기·업황변동으로 주가 하락 시 위법이 될 수 있다. 결국 이사는 단기성과와 주가부양에만 매몰돼 오히려 장기적인 가치 제고가 어려워질 것이란 설명이다.

이같은 경영 환경 악화는 비상장사의 상장 기피 현상을 불러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우리나라 기업은 투자자본 회수방법으로 M&A보다 기업공개(IPO)를 주로 활용한다. 그러나 상법 개정 이후 상장하면, 이사의 책임은 커지고 주주와의 문제 발생 소지가 더 늘 수 있다. 이에 최근 상법 개정 논의가 나오자 일부 기업은 상장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단 견해도 이어졌다. 외국계 투기자본들은 소액 지분 확보 후 경영권 이슈를 제기해 단기 주가 부양 후 매도해 차익 실현하고 떠나는 ‘먹튀’ 투자 행태가 빈번해질 수 있단 것이다. 대기업 보다 경영권 분쟁이 잦고, 주가부양 요구 등으로 주주와 분쟁 경험이 흔한 중견·중소 상장사의 피해가 더 클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이런 점을 종합해 이날 경영계는 ‘상법상 경영판단 원칙 법제화’를 제안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이사가 회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 합리적 근거에 따라 주어진 권한 내에서 의사결정을 내렸으면, 회사가 손해를 봤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상법 개정에 비해 기업의 부담을 크게 줄인 자본시장법 개별 규정 개정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모호하고, 쉬운 고발로 경영 판단에 차질이 빚어진다며 배임죄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경영권방어제도 도입, 상속세제 개선, 지배구조 외 제도 정비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은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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