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자율성 침해 우려도
은행권이 이자이익을 바탕으로 올해도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야당이 가산금리 세부 내역을 공개하는 입법 논의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최근 가산금리를 높여 이자 수익을 충당한 은행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금리로 쉽게 수익을 거두던 은행을 향해 ‘횡재세’로 제동을 걸 계획이었던 야당이 금리인하 이후 대체 카드로 은행권을 압박하고 있다.
20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민생경제 입법에 속도내면서 당내 기구인 을지로위원회, 민생경제회복단 모두 일명 ‘가산금리 원가공개법(은행법)’을 주요 검토 과제로 삼은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법 대표발의자이자 을지로위원장인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본지 기자와 만나 “가산금리 중에선 부당한 것들은 반드시 빼내야 한다”며 “은행법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을지로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사회적 대화 기구와 같은 공론장을 마련해 (가산금리 공개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앞서 지난 19일 민주당은 민생경제회복단을 출범하고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입법과제를 순차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번 1차 주요 과제에선 은행법은 빠졌지만, 당내에선 이미 지난 10월 말 ‘5대 국민 민생 입법’에 포함시킨 만큼 속도감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생경제회복단장을 맡은 허영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산금리 원가 공개법’과 관련해 “당연히 포함해서 검토하고 우선순위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가산금리 원가공개법’은 은행의 대출금리 산정 체계를 제도화하고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기금 출연금, 교육세 등 법적 비용을 포함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은행이 스스로 부담할 비용을 대출자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또 당내에선 21대 국회부터 논의됐던 ‘횡재세’의 경우, 금리 인하 국면에서 맞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은행법부터 먼저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치권이 은행법 개정에 속도를 내려는 이유에는 은행이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으로 수신이자는 내린 반면, 대출금리는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가산금리를 높여 적용했다는 지적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1~4분기 누적 합산 순이익 전망치는 총 16조924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4조9279억원)보다 13.4%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산금리 세부 항목을 공시한다는 건 사실상 원가 전략을 공개하라는 것”이라며 “교육세와 법정출연금을 없애도 대출금리 인하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다른 항목인 목표이익률을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금융권과 정치권 안팎에선 탄핵 정국으로 연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여야 간 협의체 구성도 불발된 데다 당장 입법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 간 소위 개최도 현재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 3월 대체거래소(ATS) 가동 대응 등 당장 논의해야 할 자본시장 현안도 쌓여 있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민주당은 사회적 대화 기구를 띄워 풀어갈지 검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당국도 가산금리를 직접 규제하는 것은 금융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어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그간 고금리 상황으로 소비여력이 떨어졌는데 시중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조치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질의에 “한국은행의 두 번째 기준금리 인하 이후에는 금융당국 간 협조를 통해 대출금리 인하에 속도가 날 것이다. 지금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혜림·박자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