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 “틈새시간 일기로 자신만의 언어 발전”

‘노벨문학상’ 튀르키예 작가 그림일기
30년간 기록 수첩에 쓴 ‘먼 산의 기억’
“휘발성 강한 정치적 견해는 배제시켜”



튀르키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72·사진)이 몰스킨 노트에 그린 그림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2006년 노벨상 수상 이후 그린 수천 페이지의 그림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먼 산의 기억’을 출간한 것이다. 책은 A4 용지 크기로 제본됐으나, ‘실물’ 그림 일기장은 8.5×14㎝의 손바닥만한 몰스킨 수첩이다.

파묵은 최근 헤럴드경제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더 큰 노트에 그림일기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몰스킨 공책이 제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수첩은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 때로 기차를 타고 갈 때, 어딘가에서 식사를 할 때 노트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아내와 외출을 하려고 할 때 그녀를 기다리며 노트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틈새 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어떻게 시간을 내냐고 묻는데, 이렇게 쉽게 시간을 낼 수 있지요.”

제목의 ‘먼 산’에서 감지할 수 있듯, 그의 그림일기에는 주로 풍경이 많은데, 특히 바다와 배의 그림이 많다. 일기에 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파묵은 이 역시 그저 “내가 보스포루스 해협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마침 노벨상 수상 이후 14년치의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서, 수상 이후 그림일기를 시작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책에 게재된 내용은 무려 30년 동안 이어진 작업 중 일부다.

파묵은 “제 어머니가 7살 때 일기장을 선물해 준 후부터 항상 일기를 써왔다”며 “다만 이번에 ‘먼 산의 기억’으로 출간된 일기는 그 형태, 크기가 작다는 것, 제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썼다는 것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사실 파묵에게 노벨상은 그의 작가 인생의 어떠한 큰 분기점도 되지 않았다. 이 상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일기를 쓰게 되었다든가, 또는 ‘다 이뤘다’ 등의 안도감이나 나태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파묵에게도 노벨상 수상이 큰 힘을 발휘하는 때가 있다. 21세기 튀르키예에서도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들어섰고, 정부의 검열과 탄압이 진행 중이다. 그는 그간 많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소신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용감하다고 말하는데, 나도 두려울 때가 있다”며 “튀르키예 대통령은 많은 작가들을 감옥에 넣었다. 저는 아마도 노벨상이 보호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번에 출간되며 공개된 그림 일기 중에 정치적인 견해를 담은 부분은 빠졌다. 취사선택에서 고려된 것은 ‘휘발성’ 여부였다고 파묵은 밝혔다.

“정치적 노트들은 아주 빠르게 휘발됩니다. 화를 내고, 정치적 분석을 한 내용들 말이에요. 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의 약 75%가 대통령에 분노하고 있지요.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상황 역시 노트에 적었을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모두 잊고 맙니다. 그때는 아무도 제가 쓴 것들을 읽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정치적인 것이 빠르게 ‘예전의 것들’이 되어버리는 이유는 “작가 한 사람의 독창적인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국에 관한 분석과 평가는 그 시기 사람들 모두가 쓰는 이야기라는 취지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파묵 작가는 “한국인 75%의 바람에 존경을 표한다.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고, 나머지 작품들도 구입해 놓았다. 곧 읽을 것”이라며 노벨상 수상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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