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신앙교리부 차관보 필립 퀴르블리에 대주교(좌)와 대화하고 있는 박용만 회장(우) |
-CPBC 성탄특집 다큐 12월 24일(화) 오후 9시 50분부터 2부작(총 120분) 연속 방송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천주교 공동체의 기적이 담긴 특별 다큐멘터리 ‘죽음에서 돌아오다, 메일린의 기적’이 성탄절 전야인 24일 저녁 9시 50분에 CPBC가톨릭평화방송에서 총 120분 분량의 2부작으로 연속방영된다.
한국 방송사상 유례 없는 아름다고 놀라운 기적 이야기를 담은 이번 성탄특집 다큐멘터리는 뇌사상태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3살 어린이 메일린의 이야기다.
2012년 프랑스 리옹에서 살던 3살의 메일린은 식사 중 음식물이 목에 걸려 질식해 뇌사 상태에 빠졌었다. 의사들 마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생명유도장치를 떼내고 안락사를 권유했지만, 메일린의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뇌사 상태 빠졌던 ‘메일린’, 간절한 전구 기도로 회복한 기적의 이야기 담아
메일린의 가족들은 19세기 교황청 전교회를 세운 ‘하느님의 종’ 폴린 마리 자리코(1799~1862)에게 전구(轉求, 천주교 신자가 다른 이에게 자신의 기도를 하느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기도)를 청하는 9일 기도를 시작했고, 그 후 메일린은 기적 같이 건강을 회복해 2012년 12월 완치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바티칸은 이를 기적으로 승인하고, 전구자인 폴린 자리코는 2022년 5월 시복됐다.(諡福, 가톨릭에서 누군가를 ‘복자’로 인정하는 행위) 세 살이었던 메일린은 어느덧 열다섯 살 중학생 소녀로 성장해 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 안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메일린의 기적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 같은 메일린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박용만 실바노 회장(현 (재) 같이 걷는 길 이사장, 전 두산그룹·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덕분이다.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에 직접 참여한 박용만 회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외할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 자신 또한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1986년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가톨릭 종교와는 매우 가깝다.
“지난 5월 바티칸에 계시는 한 신부님과 통화하다 로마에 한번 안오냐고 물어 얼떨결에 가게됐다. 그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다 복도를 지나면서 폴린 자리코 초상화를 볼 수 있었고, 3살 어린이의 기적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 파괴된 뇌세포는 살아나지 않는다. 설령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평생 중증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 아이는 정상인으로 활동하며, 스키도 탄다고 한다. 그러니 현대의학으로는 절대 설명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바티칸에도 의사들이 있어 검증을 한다. 메일린의 기적은 현대의학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된 거다.”
박용만 회장은 메일린의 이야기를 듣고 그 어린 아이의 이미지가 좀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번도 보지 못한 아이였음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건 박 회장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티칸 신부를 통해 메일린 아빠를 수소문해 지난 7월 메일린 아빠를 만났다. 약속장소에 아빠가 10대 소녀와 함께 오는데, 생면부지의 아이였지만 단번에 메일린임을 알 수 있었다. 박용만 회장은 아빠와 대화하면서 이를 사람들에게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메일린 아빠와 원칙을 세웠다. 아이가 아주 평범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과 아이가 너무 셀럽화 하는 걸 자제하자는 원칙이었다. 아빠도 흔쾌히 동의했다. 지난 8월 메일린 아빠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아빠는 증인들로부터 취재 허락을 받아냈고, 나는 방송국을 통해 신부님들의 허락을 받아냈다.”
메일린 실화 다큐멘터리 제작에 직접 참여한 박용만 회장. |
-다큐 제작 위해 프랑스 리옹부터 11개 유럽도시 이동거리 41,000km의 해외 로케 촬영
이번 다큐멘터리는 메일린의 이야기를 따라 프랑스 리옹, 니스에서부터 스위스 제네바,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까지 전 세계 11개 도시에서 촬영했다. 방송 하나 하려고 지난 6개월간 거쳤던 이동거리를 합치면 41,000km, 15일의 해외 로케를 통해 바티칸이 승인한 현존하는 기적의 현장과 목격자, 증인들을 만나 다큐물을 완성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취재하다가 점심을 거르기가 예사였고, 그러다 밤 10시가 되면 숙소로 들어왔다. 귀국한 후 부족한 부분을 보충 취재하기 위해 재방문하기도 했다.
“기획자인 저를 포함해 작가, 피디, 촬영, 진행, 현지코디 등 6명의 크루가 구성됐다. 지난 11월 17일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을 다니며 인터뷰도 했다. 승용차, 기차, 항공기로 이동하며 증인들을 찾아다녔다. 특히 교황청은 시성부, 신앙교리부, 복음화부라는 교황청 핵심부서 3곳에 대한 전격적인 촬영허가를 내주었다. 정순택 대주교, 염수정 추기경, 통역을 담당하는 바티칸 교황청 복음화부의 한현택 몬시뇰 같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메일린 기적 이야기를 취재하는 박용만 회장 |
이번 다큐는 크게 실제사건의 전개와 신학적인 해석으로 나눠진다. 전자는 메일린 아빠가 맡았고, 후자는 박용만 회장이 바티칸 교황청 인물들을 통해 진행을 맡았다. 그 결과로 바티칸에서는 3개 부서가 문을 열어주고, 차관보급의 주교가 인터뷰를 해준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박 회장은 “보통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도 가봤다. 김대건 신부님의 기적 심사서류도 봤다”고 전했다.
-교황청 핵심부서 3곳 촬영 허가…바티칸 성직자 7인 인터뷰, 염수정 추기경 추천사
7인의 바티칸 성직자와 기적 분야 최고 권위자의 인터뷰 외에도 염수정 추기경의 추천사를 함께 담았다. 염수정 추기경은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는 귀한 성탄의 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은 메일린 기적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공개하려는 이유를 몇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첫째는 기적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실체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 박 회장은 “나는 실체를 봤다. 밝게 자란 아름다운 소녀는 실체다. 재생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이렇게 변한 걸 실제 본 것을 증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암 등 일부 불치병을 제외하고 못고치는 게 없는 현대의학이며, 평균수명이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현대의학으로 해결 못하는 게 있다는 점. 그걸 뛰어넘는 절대자의 개입,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그래서 자연과 신 앞에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희망만을 보고 사는 부모에게 절망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점. 박 회장은 “절망에서 아이의 소생을 목격하고 더불어 살아가게 되고, 그 자체가 너무 따뜻하다. 어려운 시기에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가슴에 남았으면 좋겠다. 중학교 3학년인 아이가 키가 나만하다”고 전했다.
메일린의 엄마는 생후 6개월 때 한국에서 입양됐지만 한국어와 한국을 모른다고 한다. 아빠는 베트남과 프랑스 혼혈인이다.
박용만 회장은 “이 이야기를 알리겠다고 하자 메일린 아빠가 흔쾌히 동의했다. 메일린 아빠가 일이 바빠 일을 줄여서라도 알리고 싶었는데, 내가 한다니까 너무 좋아했다”면서 “메일린 아빠와 세번 만났는데 친구처럼 지낸다. 메일린도 남의 딸이지만 내 손녀같다”고 말했다.
다큐 자료를 찾는 박용만 회장 |
메일린 가족은 박 회장의 초청으로 내년 2월 마지막주에 한국에 온다. 메일린 아빠는 딸의 기적후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딸의 기적 과정을 책으로 썼다. 내년 1월쯤이면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죽음에서 돌아오다 – 메일린의 기적’ 번역본이 나온다.
-“저에게는 늘 좋은 스승님이 계셨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그룹 회장 출신이다. 요즘은 기업인이 아니라 (재)같이 걷는 길 이사장으로 선행과 자선을 베풀고 있지만, 그래도 메일린의 기적 이야기와 같은 일에 매달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거창한 건 아니다. 현자라서 어느날 큰 깨달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저한테는 늘 좋은 스승님이 계셨다. 프란체스코 교황, 故 정진석 추기경, 염수정 추기경. 특히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님 두 분은 한달에 한번씩 뵙는 분이었다. 이 분들의 말씀을 통해 채리티(자선)와 이웃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했다. 제공자와 수혜자의 관계를 재설정했다. 그러면서 연민과 동정이 주는 사람으로서 이웃에 가진다는 기존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무려 8년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했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상공회의소 회장은 자리가 주는 스승인 셈이다. 기업 경영과 상의 회장을 두루 경험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균형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기업 활동은 회사 구성원과 주주 이익을 대변하지만 사적 이익 추구가 목표다. 그러나 상의 회장은 상공업계를 대표하며 공적 이해를 다룬다. 무한 이윤추구만 가지고는 될 수 없다.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이뤄지는 공동의 선, 이런 분야에 관심이 생기고 기존 생각도 바뀌었다.”
박용만 회장은 “신앙과 기업 활동이 대립하지는 않는다. 둘이 발맞춰 나가는 게 현명한 기업인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적인 것도 신앙에서 가르치는 교리와 다르지 않다. 적법하고, 투명하며, 도덕적 경영과 같은 덕목이 요구되는 기업에서는 오히려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박용만 회장은 이번 다큐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가장 많은 은총을 받은 것도 자신이라고 했다.
“가장 가까이서 들었고 증인도 직접 만났다. 인간 세계를 넘어 신과 자연의 섭리를 접하니 의외로 평화롭다. 모든 것을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할 때에는 초초해진다. 내가 다 가졌나? 더 좋은 치료법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걸 훌쩍 뛰어넘는 세계를 보니 편안해진다. 인간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신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박용만 회장이 이번 방송을 제작 하러 떠나기 전 염수정 추기경에게 인사를 하러갔다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전구자인 폴린 자리코가 19세기 초중반 가톨릭이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외방선교회를 통해 프랑스 신부들이 들어올 때 많은 도움을 준 분이라고 했다. 참으로 희한한 인연이다.
-성탄절에 전하는 희망과 은총의 이야기
CPBC가톨릭평화방송의 이번 다큐멘터리 ‘죽음에서 돌아오다 – 메일린의 기적’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신앙의 가치와 기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박용만 회장은 “메일린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유난히 추운 2024년 세밑을 희망과 은총으로 밝혀줄 성탄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특집다큐 ‘죽음에서 돌아오다, 메일린의 기적’은 CPBC 가톨릭평화방송에서 24일 오후 9시 50분에 방송한 후, 12월 25일 오후 1시30분, 12일 29일 오전 10시, 1월 1일 오후 7시에 재방송된다. 24일 CPBC플러스(OTT)에서도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