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예산 1월1일부터 쓰일 것”…“환율 급등, 국내정치·강달러 반반 영향”
면세 주류의 병 수 제한 폐지…면세점 특허 수수료율 50% 인하
계엄지시 문건 질문에는 “더 드릴 말씀 없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재부 기자실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월례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는 소폭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집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도 성장 전망은 여러 하방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하향이 불가피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한국경제 잠재성장률이 2%임을 감안하면 이보다 낮은 1%대 가능성을 밝힌 것으로, 최 부총리가 공식적으로 성장률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은행(1.9%)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의 내년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조정한데 이어 정부도 정부도 ‘성장 마지노선’으로 꼽히는 2%를 지키기 힘들다며 위기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최 부총리는 이어 성장률 숫자보다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흐름이 더 우려스럽다고 짚었다. 그는 “내수가 계속 부진한 상황에서 최근 정치적 상황 때문에 심리가 위축됐다”며 “위기 수준의 성장 전망은 아니지만 여러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최 부총리는 “잠재성장률 자체가 만족스럽지 않고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내년에 여러 상황 때문에 잠재성장률 하락이 가속할까 걱정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에는 위기의식을 갖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성장 전망을 낮추더라도 세입추계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내 발표될 예정인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대해선 “본예산이 1월 1일부터 최대한 빨리 쓰이도록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며 ”기금운용계획변경·민간투자·탄력세율 등을 모두 동원해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외신인도와 관련해 외국인투자 관련 인센티브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도 역점을 두려고 한다”며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통상환경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중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것까지 이런 네가지가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용산 대통령실과의 소통 여부를 묻자 “전혀 소통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1분기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에 대해선 ‘본예산 조기집행이 우선’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최 부총리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내년 예산이 1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며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으로 11조6000억원을 추진하는데, 복지가 3조9000억원·사회간접자본(SOC) 4조4000억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12월부터 지출원인 행위가 가능해지고, 2분기 집행했던 사업들을 1분기에 당겨 추진할 수 있다는 게 최 부총리의 설명이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국고보조사업에 국비를 우선 교부하거나 교부 기간을 단축하는 ‘신속집행’으로 보조금 재량지출을 상반기 3조원 늘려 집행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최 부총리는 “기존 예산을 최대한 전례 없이 당겨서 집행해 국민 손에 잡히도록 해보겠다”며 “그 외 추가적 논의는 적절한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조기 추경 주장에 대해선 “한은 총재의 의견은 귀하게 듣지만 내년 상황에 따라서 여러 대책을 논의할 때 참고하겠다”고 언급했다. 더 적극적인 재정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과거보다는 훨씬 더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면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어떻게 할지는 항상 열려있다”고 답했다.
계엄사태 이후 환율 상승세와 관련해서는 “절반 정도는 정치적 사건으로 올랐다고 보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강달러 때문으로 평가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부 국내 (정치) 요인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정확한 분석은 아니다”라며 “외환 당국으로서는 환율의 일방적인 급변동에 대해 강력하게 시장안정조치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증시 밸류업 관련 정책에 대해선 “밸류업 지수에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하게 하고 지수를 보완하는 게 첫 번째”라며 “기업 지배구조, 세법 관련 부문은 여·야·정에서 하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고, 상법 논의도 여야정 틀 안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법, 인공지능(AI) 법 등 여야를 막론하고 당장 필요한 법이 올해, 늦어도 내년 초에는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여야정 합의도출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대외신인도에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최 부총리는 내년부터 해외 여행자가 국내에 반입할 수 있는 면세 주류의 병 수 제한을 폐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현재는 술을 2ℓ 및 400달러(약 58만 원) 한도에서 최대 2병까지 면세로 들여올 수 있는데, 병 수 제한을 없애 용량이 작고 값싼 술을 쉽게 들여올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면세점의 특허 수수료율은 50% 인하해 연 400억원 수준인 면세점 업계의 수수료율 부담을 절반으로 낮춰주기로 했다.
한편 국회 운영비 중단 등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 계엄지시 문건과 관련해서 최 부총리는 “수사기관에 제출한 자료에 관해서는 수사기관에 물어야 할 상황”이라며 “국회에서 답한 것 외에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 확보한 비상계엄 지시 문건에는 국회 운영비를 끊고 비상계엄 입법부 운영 예산을 편성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 부총리에게 이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총리는 문건을 받은 즉시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보관하다가 계엄이 해제된 뒤에서야 생각이 나 문건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탄핵 가능성에 따라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에는 “대외 신인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한덕수 권한대행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무회의에 상정될 내란 특검법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국무위원으로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며 “사전에 제 생각을 대외적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