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해양 업체 인수도…해양 산업 영역 넓히는 한화
3세 경영 기반 마련한 한화, 공격적 M&A
필리조선소 전경. [한화오션 제공] |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한화그룹이 최근 미국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 인수 절차를 완료하는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이어가고 있다. 줄지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지난해 3세 경영 기반을 다진 한화그룹이 본격적으로 특화 사업을 발굴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화그룹이 최근 인수를 완료한 필리 조선소는 미국 해군 함정 건조 및 유지·보수(MRO) 사업 거점으로 주목받는 조선소다. 미국에서 건조된 상업용 선박 절반이 이곳에서 공급된다. 다만 미국 조선업 침체로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필리 조선소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투자 성과가 불확실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4일 필리조선소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필리조선소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3억1710만달러, 누적 영업손실 562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누적 매출은 3820만달러 늘고, 영업손실은 810만달러 늘어난 수치다. 필리조선소 영업손실은 지난 2018년 적자 전환한 이후 올해까지 7년째다.
증권가에서도 향후 필리조선소 생산성 확대가 관건일 것으로 봤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은 “(필리조선소의) 노후화한 설비와 높은 임금으로 인한 낮은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을 시 일정 지연 등을 비롯해 영업이익 개선 기대가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선 업계 채용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필리조선소 인력은 총 1679명인데, 이중 70%(1175명)이 하도급 인력이다. 이와 관련해 필리조선소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지역 인력 채용이 어려워지면서 필리 조선소는 이전보다 더 하도급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며, 대신 “실습생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인력 구성은 국내 조선 업계가 추구하는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건조 인력이 없어 외국인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방산 특화 업체인 한화로서는 미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렵다. 미국 군함 건조 시장은 연간 20조원으로, 글로벌 시장(80조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내년 트럼프 정권에서는 한미 해군 MRO 협력이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전날 미국 의회에선 미국 건조 선박의 수리비 세금을 면제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동맹국 중 상선 건조 능력을 갖춘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해, 한국 수혜가 커지는 법안으로 평가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MRO 분야에서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미국에서의 한화오션 수주 성과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해군 4만톤급 군수지원함인 월리쉬라함 창정비 사업을 체결했다. 미국 해군 MRO 사업에 국내 조선 업체가 참여한 첫 사례다. 지난달에는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3만1000톤급 급유함인 유콘함 정기 수리 사업을 따냈다.
다만 해군 MRO 수익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도 있다. 조선 업계 한 관계자는 “군함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투자 비용도 크지 않다”며 “한화오션으로선 방산이라는 특화 분야를 살릴 기회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화오션 외에도 한화그룹은 올해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공격적인 M&A를 펼치고 있다. 한화그룹이 3세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특화 분야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도 평가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삼형제’ 독립경영을 위한 계열사 분리 작업을 마쳤다. 한화솔루션으로부터 백화점 사업부 갤러리아 부문이 인적분할되면서다. 이를 통해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의 개별 경영 입지가 마련됐다.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솔루션은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8207억원을 투입해 싱가포르 해양설비 제조업체 ‘다이나맥’ 지분 95%를 인수했다. 올해 이뤄진 기업 M&A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이어 필리조선소 인수, 다이나맥까지 한화가 해양 산업 입지를 키우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김동선 본부장은 단체급식 업체 아워홈 경영권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아워홈 기업 가치는 지분 100% 기준 1조5000억원, 인수 자금은 86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한화푸드테크에 단체급식 사업본부가 신설되는 등, 김동선 부사장은 푸드테크를 새로운 사업 모델로 내세운 바 있다.
금융 분야에서도 사업 확장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한화투자증권은 인도네시아 칩타다나증권을 인수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앞서 진출한 베트남과 싱가포르에 이어 인도네시아까지 영역을 넓혔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경영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생존을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M&A를 펼치고 있다”며 “핵심 사업 분야와 연결된 회사들을 인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