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잘 유지하는 것이 불안해소에 도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총 든 군인들이 국회로 막 들어가는데, 군홧발에 짓밟히고 삼단봉을 얻어맞아 머리가 깨지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거에요. 계엄이 얼마나 무서운데. 다시 그 시절이 오면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죽어서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나고, 울화통이 터졌죠.”(고등학교 2학년 때 5·18을 경험한 택시기사 정모(62)씨.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지 3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밤에 잠을 잘 못자거나 걱정이 되어 하루종일 뉴스를 틀어놓고 울화통이 터지는 계엄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희망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계엄 당일 늦은 저녁 무장을 한 특수부대가 국회로 들어가는 모습을 뉴스로 접한 시민들은 아직 그 잔상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인 권모(25) 씨는 “계엄 당일 뉴스를 계속 틀어놓고 있었는데, 시민들이 국회 앞에서 군인들이 탄 버스를 막고 국회 안에서 군인과 민간인이 대치하던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했다.
권씨는 “계엄은 해제됐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봐 밤마다 뉴스를 틀어놓고, 매일 속보가 뜨진 않았는지 찾아보고 있다”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도 아니니 뉴스를 볼 때마다 무력감도 커지고, 아직 탄핵이 진행 중이니 사회적인 불안감도 크다”고 설명했다.
계엄 당일 회식을 하고 있었다던 김모(32) 씨는 “친구들과 계엄 선보를 실시간으로 봤던 당시는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라며 “2차 계엄을 할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계엄 이후 일주일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봐 저녁 외출이나 외식도 잘 하지 않았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온 예비군들도 아찔하긴 마찬가지였다. 예비군 3년차 김모(28) 씨는 “계엄 당일 동원명령이 떨어지면 나가야 되나, 계엄 관련 예비군 동원 관련 조항을 친구들과 찾아보면서 불안에 떨었다”며 “군인으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전쟁이 일어났다면 국회에 들어간 특수부대들은 전우였을텐데, 민간인들과 대치하는 상황을 보니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으면 나도 저기 있을 수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동안 우울감이 가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군인들이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 |
국회에 투입됐던 특수부대원들의 트라우마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당시 국회 출동 임무를 맡았던 김현태 707특수임무단 단장(대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707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우리 부대원들은 국가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아들과 딸이다. 707부대원들을 미워 말아달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반응’이라면서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계엄이 선포된 후 1~2주차에는 잠도 못 자고 하루종일 뉴스만 보고 잘 놀라고, 일도 손에 안 잡힌다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다만 우울이나 불안장애가 있다든지, 트라우마에 대한 경험을 했던 분은 더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심각한 위협을 국민들이 느꼈고 일상이 파괴될 수 있는 과정을 느낀 국민들이 이른바 ‘계엄 트라우마’를 느낀 것”이라며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이 불안을 해소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이번에도 위태한 상황 속에서 희망도 보였던 만큼 낙관적인 마음의 자세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계엄 트라우마 치료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다. 과천시보건소 산하 과천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군부대나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료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또한 계엄령 선포 관련해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