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생, 생산직, 연구직까지 “돈 줘도 안 간다”
고등학교부터 끊긴 인재 양성…학과 절반 사라져
기술 훈련 없어 조선사 채용 ‘무용지물’ 우려
조선소에서 한 직원이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박혜원·고은결 기자] #1. 한때 조선계열 특성화고였던 목포공업고등학교 조선기계과는 지난해 사라졌다. 마지막 모집 당시 정원을 채우지 못해 존폐 기로에 놓인 조선기계과에 “취업률이 낮고 진로가 불투명하다”고 본 교육청 판단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역대급 수주 호황을 맞아 현대삼호 등 목포공고와 인접한 대규모 조선사들은 수 년 만에 현장직 채용에 나섰다. 정작 더 이상 목포공고는 조선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다.
#2.최근 한 중견조선사는 무상교육에 훈련수당 매월 130만원, 근속장려금 220만원까지 지원하는 기술연수생 모집에 나섰다. 그럼에도 모집이 쉽지 않아 전전긍긍하다. 이처럼 최근 조선사들은 숙련 인력은 물론, 기업에서 직접 교육하는 연수생까지 아쉬운 처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금은 낮고 안정성은 떨어진다는 인식에 청년층 숙련공이 점점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직업계 고등학생 등 현장직부터 기술연수생, 석·박사급 연구직까지 조선 업계가 전 연령에 걸친 ‘인재난’에 시름하고 있다. 10년 만의 ‘슈퍼사이클’을 맞아 대형 조선사들엔 일감이 쌓였는데 정작 인력이 없어 소화하기 벅찬 상태다. 조선사들은 서둘러 대규모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숙련 인재 양성 체계가 끊긴 상태라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조선·해양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가 발간한 ‘2024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특성화·마이스터고 조선·해양 전공학과는 전국에 총 7개다. 2019년만 해도 15개였던 학과가 절반 가까이 사라진 것이다. 이듬해인 2020년엔 여기에서 3곳이, 2021년엔 무려 7곳이 또 폐과했다. 청년층의 조선업 기피 현상으로 직업계 학교들이 조선 관련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한 영향이다.
목포공고도 이런 사례다. 10여 년 전에는 입학 경쟁률이 3대 1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작년엔 정원조차 채우지 못했다. 목포공고 관계자는 “백방으로 신입생을 찾아봤는데 실패했다”고 털어놨다. 이 경우 교육청에서 학과 존폐 여부를 결정하는데, 당시 전남교육청은 “조선 업체들이 주로 군필자를 선호해 목포공고 졸업생은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며 폐과로 결론을 내렸다.
인력난이 심화한 지금은 조선 업체들 처지가 아쉬워졌다. 당장 목포공고 인근 현대삼호가 매년 30명 규모로 고졸 인재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다른 업체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하반기 채용에 이어 내년까지 고졸을 포함한 현장직을 뽑을 계획이다.
[챗GPT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 |
정작 조선업 전문 인재 양성은 끊긴 지 오래다. 조선 업체들의 대규모 채용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선 업계 불황이 이어지면서 조선 인재를 양성해온 고등·대학교 학과들은 잇따라 폐과되거나, 학과명에서 ‘조선’이 빠지고 커리큘럼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목포중앙고는 조선산업과를 ‘스마트설비과’로 바꿨다.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전국 전문대에 설치된 조선 관련 학과는 올해 7곳으로, 2016년 17곳에서 대폭 줄었다. 4년제 대학의 경우 전국에 52개 학과가 있으나 용접 등 필수 기술 교육은 줄이는 추세다. 조선·해양 인적자원개발위원회 관계자는 “자율운항에 초점을 맞춰 이공계 교육과 융복합해 전통적인 설계 중심 교육에선 벗어난 상태”라고 말했다. 조선 관련 학과를 졸업하더라도 정작 업계에 시급한 생산 인력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 [HD현대 제공] |
현장에선 젊은 인력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주요 조선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별 고용인력의 연령구조를 보면, 대체로 40대 연령층의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산 지역에선 20대 이하 인력 비중이 5.6%에 그치고, 50대 비중이 28.6%에 달하는 등 다른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노령화가 심각하다. 중소업체일수록 구인난은 더 심하다. 영세업체는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가족, 친인척과 겨우 꾸려가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웬만한 중소형 조선사도 석박사 인재를 데려올 여건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중소업체는 기술력 확보나 신사업 확장을 이끌 인력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업체규모별 고용 현황에 따르면 중소업체(10인~299인)는 고졸 학력의 비중이 80% 내외였다. 특히 30~99인 규모의 중소업체 중에서 박사급 인력은 0명이었다.
인력 부족과 경쟁력 약화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기 어려운 악순환으로 흘러가고 있다. 친환경 연료 추진선 등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기는커녕, 현재의 사업구조만 겨우 이어가는 수준이란 설명이다. 박재현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박사는 “중소형 업체의 경우 연구개발 인프라 등을 갖추지 못해 인건비와 별개로 인력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대형 조선사 외 대부분 업체는 10여년 만에 찾아온 호황기에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문제는 인재를 끌어안지 못하는 중소형 조선사들이 밀려나면, 생태계 구조가 약화돼 전체 산업 자체가 쪼그라든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인력난은 단순히 인건비 및 워라밸 문제로 보면 안 된다”며 “고급 인력들 입장에선 지속가능성을 못 본 것이고, 중소업체는 당장 죽을 판인데 연구개발 등을 위한 인력을 뽑을 사정이겠느냐”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