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개발 소액주주 여부 논쟁, 이사 추천 없는 점 미흡
MBK 이사회 장악 못하면 영향력 행사↓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반대한 사외이사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최대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경영권 분쟁 이후 처음으로 내부에서 견제하는 의견이 나왔다.
고려아연은 내달 23일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다. 이번 임시 주총은 올 9월 시작된 경영권 분쟁의 승기를 판단할 전환점으로 예상된다. 현재 약 41%의 주식을 소유한 영풍-MBK 측과 17.5%를 가진 최 회장의 분쟁 당사자들은 이사회 장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 주총에서 논의될 안건 중 ‘집중투표제’가 논쟁 대상으로 떠올랐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1998년 도입됐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정관에서 배제하고 있다. 삼일PwC 분석에 따르면 국내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482곳 중 지난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비율은 3%에 그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의 보유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신임 이사 7명 선임을 기대하는 고려아연 계획에 따르면 주주는 1주당 7개 의결권이 부여되는 셈이다. 이를 특정 이사에 몰아줄 수도 있고 분산해서 행사해도 된다. 신임 이사 후보들은 득표수에 따라 순서대로 선임되는 식이다.
이는 고려아연 주식 1.6%를 소유한 유미개발이 제안했다. 유미개발은 최 회장 일가의 가족회사라는 점에서 최 회장 의중이 반영됐을 개연성이 있다. MBK와 영풍 측은 집중투표제 도입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전제로 신규 이사 선임을 추진하고 있어 MBK와 영풍 측의 이사회 주도권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사실상 최 회장을 위한 제도로 정의하고 소액주주 보호라는 명분도 약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고려아연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장치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고려아연 이사회 내부에서도 우려 섞인 시선은 확인된다. 임시 주총 안건을 논의할 때 권순범 사외이사는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법률 전문가인 권 이사는 반대 이유로 ‘논란 가능성’을 언급했다. 경영권 분쟁 이후 모든 이사회에 불참한 성용락 사외이사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나온 반대 목소리다. 집행임원제 도입에 반대한 김도현 사외이사가 있으나 해당 안건은 MBK 측이 제안한 만큼 내부 이견으로 보긴 어렵다.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과 MBK 측이 제안한 14명 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의결사항에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 ‘조건부’라는 점에서 가결될지 미지수다. 고려아연 측이 주도하는 집중투표제와 이사 수 상한 19명 설정 등이 부결될 경우에만 MBK 측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사 선임안이 안건에 상정될 예정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원은 13명이다. 기타비상무이사인 장형진 영풍 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모두 최 회장 측 인사다. 고려아연 계획대로 이사 수가 19명으로 제한되면 MBK 연합이 이사회를 장악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시장 관계자는 “집중투표제를 제안한 유미개발이 최윤범 회장 가족회사라는 점에서 제도적으로 보호하려는 ‘소수주주’로 볼 수 있을지 논쟁 여지가 있다”라며 “유미개발을 소수주주라고 본다 해도 유미개발이 주주권을 대변할 사외이사를 따로 추천하지 않은 점도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