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헤럴드DB]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채용이 거의 확실시 된다며 전화로 출근 날짜까지 조율했지만, 며칠 뒤 다른 사람을 채용하기로 했다며 ‘입사 보류’를 통보한 것은 부당 해고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채용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만으로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박정대)는 화장품 원료 제조사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를 인정한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사는 2022년 10월 관리총괄 이사 채용 공고를 냈다. 약 한 달 뒤 A사의 대표이사가 최종 면접을 본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는 B씨에게 “합격이 두 사람으로 좁혀졌다”, “함께 근무가 가능할 것 같다”며 4일 뒤 출근을 요청했다. B씨가 최종 결정이 언제인지를 묻자 대표는 “오늘 이걸로 거의 최종”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근을 하루 앞두고 A사는 B씨에게 ‘입사 보류’를 통보했다. 사실상 불합격 통보였다. A사가 다른 후보자를 채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표는 ‘내부 조율 후 연락 드리겠다. 다른 곳에 취업해도 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B씨는 A사의 문자가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지방노동위가 이를 기각하자 다시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는 “근로관계가 성립했다”며 A사의 문자 메시지는 서면통지의무 위반에 해당해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A사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사의 손을 들어줬다. ‘합격 가능성이 높다’는 전화를 합격 통보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해당 전화가 명시적인 근로 계약이 되려면 출근 날짜 외에도 연봉, 근무 조건, 휴무, 복지 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대표와 B씨의 통화에 대해 “대표이사가 사용한 ‘두 사람으로 좁혀졌다’, ‘일단’, ‘거의’ 등의 표현을 보면 내부적으로 두 후보 중 참가인과의 근로계약 체결을 유력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거의 최종’이라는 표현이 채용의사가 외부적·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표명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출근’이라는 표현이 업무 시작을 의미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도 봤다. 1심 재판부는 “‘출근’은 구체적 근로조건 협의를 포함한 2차 면접을 의미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설령 근로자로서 출근을 의미한다 해도 향후 직접 만나 ‘최종 근로계약’이 체결된 것을 전제로 출근일을 협의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회사와 채용 내정자의 통화가 근로계약이 되기 위해서는 중요사항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임금, 종사 업무, 근로계약 기간 등 근로계약의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의사의 합치가 존재해야 한다”며 “원고가 제시한 조건에 B씨가 동의할 경우 승낙의 의사표시가 존재하게 되고 근로계약이 성립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