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충돌 만으로 설명 안된다…‘복합불능’ 상태였나 [세상&]

조류충돌 확인됐으나 사고원인 단정은 일러
주날개 하부 랜딩기어 하강 안한 이유 불명
플랩·스포일러 미작동… 비행속도로 ‘쾅’
블랙박스·통신기록 등 확인 작업 1달 이상 소요

3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 등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전남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사고의 원인을 두고 당국이 발빠르게 조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사고 직전 ‘조류충돌(버드스트라이크)’이 있었고, 동체착륙을 했으며, 제 때 속도를 줄이지 못했고, 활주로 외벽에 충돌후 폭발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활주로를 역주행해 착륙을 서둘러야 할만큼 상황이 긴박했고 주제동장치인 랜딩기어가 하강하지 않은 것이 사고 피해를 키운 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주날개에 장착된 제동장치(플랩·스포일러)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여객기에는 화재 피해를 줄일수 있는 ‘연료배출장치(퓨얼덤핑)’도 없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소사(燒死)’했다.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비행기의 착륙장치인 랜딩기어가 하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랜딩기어가 하강하지 않은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은 확정적이지 않다. 다만 사고 직전 조류 충돌이 있었다는 사실이 영상과 함께 생존자의 증언으로 확인된 상태다. 구조된 제주항공 여객기 승무원은 “조류 충돌로 추정된다. 한쪽 엔진에서 연기가 난 후 폭발했다”는 목격담을 구조대에 남겼다. 해당 승무원은 목포지역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만 조류 충돌이 랜딩기어가 내려가지 않은 원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랜딩기어를 작동시키는 유압장치가 엔진정지로 작동을 멈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엔진에서 발생한 압력을 유압계로 보내 동력을 확보하기 때문에, 누유 등 상황이 발생하면 정상 작동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은 엔진이 작동할 경우 유압장치는 정상작동이 가능하고, 최악의 경우 두 엔진이 모두 멈췄더라도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하강 시키는 방법도 있다.

사고기(B737-800)와 동일한 기종의 랜딩기어 부분. 사고기의 랜딩기어는 덮개가 없어 수동으로 락(lock)만 해제하면 중력에 의해 랜딩기어가 내려오는 구조다. [온라인커뮤니티]

사고기(B737-800)는 랜딩기어 덮개가 아예 없는 구조다. 랜딩기어와 덮개가 걸리면서 기어가 하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기종의 경우 아예 덮개가 없다. 때문에 수동으로 랜딩기어를 내릴 경우 중력에 의해 자동으로 랜딩기어 하강이 가능하다. 사고기는 뒷바퀴 랜딩기어를 내리지 못한 채 후미 부분을 무안공항 활주로에 끌면서 착륙했다. 랜딩기어에는 브레이크 장치가 있어 비행기의 속력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랜딩기어 없이 착륙한 사고기는 속력을 제 때 줄이지 못했다.

국내항공사의 한 기장은 “조류 충돌로 하나의 엔진이 비정상으로 작동하더라도 나머지 엔진으로 수동이든, 중력으로든 랜딩기어를 내릴 수 있다. 관련 장치는 겹겹이 있다”고 했다. 한 대학의 항공학과 교수는 “두 엔진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내릴 수 있는 방법이 매뉴얼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사고기의 착륙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중 하나다. 통상 비행기는 시속 200km 안팎의 속도로 착륙하는데, 영상속 사고기는 이보다 빠르게 착륙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주날개의 제동보조장치가 작동치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영상 속 사고기는 주날개의 플랩(flap)과 스포일러(spoiler)가 모두 작동치 않았다. 플랩은 주날개의 하단에 설치돼 있는 착륙 시 낮은 속도에서도 양력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장치고, 스포일러(spoiler)는 착륙후 주날개의 상단에서 위로 펴지며 비행기를 눌러 마찰력을 높여 제동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다.

영상속 사고기는 그러나 플랩을 펴지 않아 통상보다 빠른 속도로 최초 육상에 접지됐고, 접지된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펴지지 않아 마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해 주어진 거리 내에서 제동에 실패했다. 주날개의 주요 제동장치 두가지가 함께 작동치 않았던 것으로 영상속에서 확인되면서 유압계 이상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고기가 활주로를 역주행해 착륙을 시도한 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보다 급박히 착륙을 해야하는 상황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사고기는 무안공항을 한차례 복행한 뒤 통상 착륙의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 착륙을 시도했다. 최초 활주로에 기체가 닿은 지점 역시 활주로(2.8km)의 중앙부근이어서, 제동에 필요한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6000시간 넘는 비행시간을 가진 베테랑 기장이 왜 급하게 착륙을 시도했는지는 통신기록 등이 확보돼야 확인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 단계에서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정하는 것을 자제 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연방항공청 안전조사관 데이비드 소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선언적인 발표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고, 스캇해밀턴 항공산업 컨설턴트는 “현시점에서 이 사고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현재 시점에서의 모든 추정과 추단은 향후 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인 사고원인 조사는 이제 시작단계다. 사고 원인을 알려줄 주요 단서로 지목되는 ‘블랙박스 해독 작업’엔 한 달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 등에 따르면 제주항공 7C2216 여객기의 비행자료기록장치(FDR)는 외형이 일부 손상된 채 수거됐다. 항철위 관계자는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는 외형 그대로 수거됐는데 FDR은 일부 분리가 됐다”면서 “FDR 해독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한 달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조사에는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참사기종인 보잉 737 800 제조사와 연방항공청(FAA)도 함께올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자료기록장치(FDR)의 외형 손상이 심각할 경우 NTSB에 분석을 의뢰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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