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부터 줄여야하는 자영업자들 대안으로
페업사업자, 자영업자 대출 역대 최고치
새로운 ‘불황형 소비’ 사례라는 평가도
가게 운영비 부담이 커진 자영업자가 ‘가성비’ 결제단말기를 선호하면서 관련 서비스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주문을 하는 모습. [정호원 기자] |
[헤럴드경제=정호원 기자] “갈수록 인건비는 오르지 연말인데도 장사는 더 안돼 가게를 접어야 할지 고민이 큽니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2024년 연말 그 어느 때보다 더 혹독한 시기를 견디고 있다. 코로나19가 온나라를 삼켰던 위기도 버텨낸 이들이지만, 지금의 얼어붙은 내수는 이들을 또 한 번 폐업의 기로로 내몰고 있다.
당장 인건비부터 줄여야 하는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그나마 가격이 기존 대비 10배 가량 저렴한 ‘가성비 키오스크’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최대 300만원 수준의 대화면 키오스크 대신 20만원대의 스마트폰 크기 소형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극심한 매출 하락과 쌓여가는 대출 연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소형 키오스크로 눈앞의 높은 인건비를 낮춰 고정 비용 일부라도 감소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성비 키오스크 시장이 커지는 이면에는 자영업자들의 눈물이 숨겨져 있다. 통계 집계 이래 폐자영업자 수와 자영업자 대출액이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 속에 가성비 키오스크로 생존을 향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성비 키오스크’는 경기가 불황일수록 지불 능력이 떨어지면서 저렴한 상품 위주로 찾는 ‘불황형 소비’의 새로운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크기가 작고 저렴한 가격대의 키오스크를 선호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사진은 실제 카페에 비치된 페이히어의 ‘미니 키오스크’의 모습. [페이히어 제공] |
30일 토스플레이스에 따르면 토스 단말기를 사용하는 가맹점 수는 12월 기준 8만5000곳을 넘어서며 전년 동기 대비 약 4.5배 늘어났다. 기존 대형 키오스크의 경우 수백만원대의 가격이지만, 성인 손바닥 크기의 키오스크 겸 카드 단말기인 ‘토스 프론트’의 가격은 20만원대 후반로 형성되어있다.
토스 관계자는 “토스단말기는 신규 창업 매장에서 시장 점유율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프랜차이즈 지점에서 볼 수 있는 대형 키오스크는 200~300만원대로 고가이기 때문에,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자영업자에게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호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인건비와 기기 구매에 모두 부담을 느끼는 영세 자영업자를 주 타깃으로한 상품을 개발해 제공한 업체도 있다.
올해 초 미니 키오스크를 출시한 ‘페이히어’는 2만원대부터 시작하는 카드 단말기를 구매하면 포스(POS)부터 결제 기능까지 사용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도 매출 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자영업자의 매출 관리 편의성을 높였다.
매장의 무인화와 자동화로 인건비 부담을 줄였다는 한 자영업자는 “이전에는 홀, 카운터, 주방에서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매체가 필요했는데 이제는 각자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인건비의 35% 정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페이히어 관계자는 “특히 최근 가게를 여는 젊은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컴팩트한 크기의 키오스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올해 초 미니 키오스크를 출시하게 됐다”면서 “올해 코엑스에서 열린 카페쇼에서 작은 사이즈의 키오스크를 선보였을 때도 큰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경기 불황 여파로 자영업자의 가게 운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한 카페에서 인건비와 기타 여건 등으로 영업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공지를 키오스크 옆에 부착한 모습. [정호원 기자] |
가게 운영에 있어서도 ‘가성비’ 상품으로 관심이 쏠린 데에는 자영업자의 사업 운영 위험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이후 소비 부진 충격을 금융기관 대출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이 속속 한계에 직면했다는 우려도 따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6일 발표한 ‘최근 폐업사업자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사업자 수는 98만6000명으로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로 가장 많았다. 폐업률은 9.0%에 달했다. 2016년 이후 7년 만에 전년 대비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지난해 폐업한 개인사업자 중 ‘사업 부진’을 이유로 문을 닫은 경우는 49.2%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소매업 폐업자 수가 27만7000명으로 폐업률이 15.9%에 달했다. 음식업도 15만8000명이 폐업해 16.2%로 높은 폐업률을 기록했다.
서울시 중구의 명동 번화가 인근에서 점포 임대에 나온 한 상가 건물 1층의 모습. [정호원 기자] |
올해 말 들어 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의결 이후 정국 혼란이 길어지고 소비 위축 현상도 심해지면서 자영업자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의원(더불어민주당)·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64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2012년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고치다. 이는 한은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약 100만 대출자 패널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사업자대출 보유자를 자영업자로 간주하고, 이들의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더해 분석한 결과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노동구조상 ‘굵고 짧게’ 일하는 노동자가 은퇴 이후 자영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586만명의 자영업자가 생겨났다”면서 “이런 자영업의 위기가 커지면 자영업 대출 연체율뿐만 아니라 연관 산업의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