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표준·시험인증학’ 과목이 개설되기를


신라와 조선의 건국설화에는 금으로 만든 자, 금척(金尺)이 나온다. 박혁거세와 이성계 모두 신으로부터 금척을 받았다는 것이다. 왕권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다.

이처럼 고대부터 도량형은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징표일 정도로 중요했다. 이집트 파라오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도 도량형을 바로세웠다.

자는 하나의 약속이자 또 다른 표현으로 표준이라 할 수 있다. 자로 길이를 재는 것은 표준에 따라 시험을 하는 것이고, 결과값이 인정받는 것은 인증을 받은 것과 효과가 같다.

표준과 시험인증은 지금 우리 삶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표준은 건강, 안전, 환경보호 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품질과 안전기준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지 확인하는 것이 시험이고, 시험을 거쳐 기준을 지키고 있다고 확인해 주는 것이 인증이다. 표준과 시험인증이 없다면 스마트폰 기종별 제각각의 충전기를 써야 하고, 새 폰으로 바꿀 때 마다 텍스트 입력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또 배터리가 언제 터질지, 액정이 곧 깨지지 않을지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게 될 것이다. 표준과 시험인증이 없다면 시장이나 공공분야, 국가간 교역 등 어느 영역에서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적합한 지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시험인증은 그 자체가 중요한 산업의 한 분야이다. 한국시험인증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시험인증 시장은 242조원에 육박한다. 국내시장도 14조6000억원 규모다. 특히 국내 제3자 시험인증 시장의 2018년부터 4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6.1%에 이른다. 시험인증 범위는 전체 산업분야에 이르고, 수출입에도 표준과 시험인증은 필수적이다. 그만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다. 게다가 시험인증 산업은 자체로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숙련된 전문인력이 사실상 전부라 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양질의 일자리라는 얘기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분야이자 산업 면에서도 비중이 적지 않은 표준 및 시험인증이지만 아직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표준과 시험인증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없다. ‘표준·시험인증학과’는 물론이고 표준 및 시험인증을 가르치는 과목조차 아직 없다.

2025년 1월, 420페이지 규모로 발간되는 ‘표준과 시험인증의 이해’라는 책도 이 같은 고민에서 준비를 시작했다. KTR 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표준과 시험인증의 중요성에 비해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조차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은 아마 국내에서 처음 나오는 표준 및 시험인증 개론서일 것이다.

시험인증의 개요, 적합성 평가체계, 국가간 상호인정, 국내외 인증제도 등 학생은 물론 여러 이해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시험인증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모쪼록 이 책을 마중물로 시험인증 및 표준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활발히 이뤄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표준 및 시험인증 전문서적이 세상에 나오고, 여러 연구가 추가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대학에서도 시험인증 개론과 같은 수업이 산업공학이나 경영학 등의 학과에서 개설되기를 희망한다. 표준 및 시험인증은 그 정도의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는 분야이다.

김현철 한국화학융합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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