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더리 거래도 활발, 드라이파우더 소진 요구
대기업 유동성 위기 속 대형 PE 투자 확대 기대
불황기 M&A, 양극화 불가피 ‘한계’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기관전용 사모펀드(PEF)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전략적투자자(SI)인 기업들이 유동성 지키기에 집중하면서 매수 역량을 지닌 시장 참여자는 PE로 대표됐다.
PE의 ‘백기사’ 패러다임도 새롭게 구축됐다. 그동안 지배주주의 낮은 지배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에 그쳤으나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바이아웃 사례처럼 경영권 분쟁도 마다 않는 백기사가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주요 M&A마다 빠짐없이 등장한 PE는 40조원을 훌쩍 넘는 실탄을 들고 내년 거래도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체결된 규모 있는 주요 경영권 양수도 거래는 총 12건, 거래 금액은 12조4143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SK스페셜티 ▷에코비트 ▷지오영 ▷롯데렌탈 ▷고려아연 ▷KJ환경 ▷SK렌터카 ▷제뉴원사이언스 등이 해당된다.
이들 거래는 PEF 운용사가 관여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모두 PE인 세컨더리 거래도 ▷에코비트 ▷지오영 ▷KJ환경 ▷제뉴원사이언스 등이 꼽힌다. PE의 신규 투자 수요와 기관 출자자(LP)의 회수 요구 등에 따라 M&A가 일부 살아났다는 평가다.
시장 내 반향을 일으킨 거래로 고려아연을 빼놓을 수 없다. ‘장 씨 가문 소유·최 씨 경영’이라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유지해 온 고려아연이 내부 공동 체계에 균열이 생기자 제3자인 MBK를 분쟁에 참여시킨 거래다. 고려아연 1대주주이자 장 씨 집안이 소유하는 영풍이 MBK에 도움을 요청해 거래가 성사됐다. MBK가 공개매수 등을 통해 확보한 고려아연 지분은 7.82%, 여기에 투입한 자금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분쟁에 뛰어든 MBK의 공격적 투자 행보를 두고 시장 내 평가는 엇갈린다. 연기금과 공제회 등 공적 자금을 운용하는 국내 PE는 분쟁을 기피하는 성향을 보인다. 주요 운용사 상당수가 분쟁 기업에 투자할 경우 투자심의위원회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상장사의 경영권 분쟁은 주가 변동을 부추기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다만 MBK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인 문제 ‘후진적 지배구조’를 공론화한 점은 고무적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깜깜이 투자 등 이사회 기능 약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만큼 앞으로 경영진의 긴장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동북아 최대 펀드인 MBK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만으로 기업들이 지배구조에 신경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MBK는 이번 투자를 이례적인 전략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고려아연의 1대주주인 영풍과 협력해 경영권 강화에 나선 만큼 일반적인 바이아웃 투자 범주에 있다고 말한다.
시장 관계자는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지 못해서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한 점은 의미가 있다”라며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유사한 투자 사례가 있어 MBK도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를 개선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지 관건”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M&A 시장에서 PE의 활약은 기대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주요 PEF 운용사가 펀드레이징에 집중하면서 투자 실탄을 마련한 상태다. MBK, 한앤컴퍼니, 스틱인베스트먼트, IMM프라이빗에쿼티 등 국내 주요 PE가 조성한 펀드 규모만 15조원을 훌쩍 넘고 있다. 이 밖에 운용사들도 펀드레이징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올 연말 PE의 드라이파우더는 4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기업의 유동성 확보 수요가 지속되는 점도 PE에는 투자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SK, CJ, 롯데 등 주요 기업들은 군살 빼기 위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 강화를 예고한 만큼 이차전지,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수출 기업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그만큼 자금 수요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불황기에 특화된 거래가 증가할 경우 시장의 질적 성장에는 따른다. 기업이 비주력 자산을 정리해 유동성 확보에 치중하고 신규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역동적인 거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이슈까지 맞물리며 시장 내 불안감은 커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어려울 때 PE는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어 투자 관점에서는 일부 증가가 예상되고 있다”라며 “다만 자금 여력을 갖춘 대형 PE에 한정되는 얘기로 자금 조달이 안되고 있는 중소형 PE의 소외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철강, 화학, 이차전지 등 주요 업종의 불황이 지속돼 성장산업 M&A보다는 구조조정만 늘어나는 점은 한계”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