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작년 3분기 손실 5000억원
규모 줄이고 공장라인 가동 중단
일부 직원 “정년 못 채울까 걱정”
지난달 27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곳곳에는 극심한 침체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여수=이영기 기자 |
1967년 조성돼 반세기 가까이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주축’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산업단지의 ‘맏형’ 격인 석유화학 업계가 휘청이면서다. 중국과 중동이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하고 고유가 여파로 원가 압박까지 받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2025년 새해를 맞았다. 여수시의 경제를 지탱하는 여수 산단이 휘청이면 여파는 지역경제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헤럴드경제는 여수 곳곳을 찾아 침체의 늪에 빠진 여수의 현 상황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편집자주>
여수시의 경제를 지탱하는 여수산단. 어업과 함께 여수 경제를 지탱하는 주축이다. 2022년 말 기준 누적 생산액 101조7000억원. 누적 수출액은 388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수산단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여수산단의 핵심 산업군인 석유화학은 2022년 4분기부터 적자를 보이며 어둠의 터널에 진입한 지 오래다. 여수시의회는 작년 6월 “지역 경제가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27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여수산단 곳곳에는 극심한 침체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직원들의 낯빛도 어두웠다. 여수의 석유화학 기업 가운데 사상 초유의 침체기를 지나는 롯데케미칼의 제1공장 앞에서 만난 직원들은 산업의 위기가 피부로 와닿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 회사에서 3년가량 일한 협력업체 직원 A씨는 “최근 월급을 보면 회사의 힘든 사정이 확 와닿는다”며 “초과근무가 줄다 보니 월 수령액을 잘 받을 때보다 40만~50만원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1공장에서 6년을 일했다는 다른 협력업체 직원 B씨는 “한두 달 전부터는 화요일 아침마다 나오던 간식도 사라졌다”며 “간식까지 사라지니 자리나 지킬 수 있을지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예전에 회사 사정이 좋아서 공장 증설을 할 때 협력사 직원 주차장은 공사 인력이 타고 온 차들로 빼곡했다”며 “(주차장을 가리키며) 지금은 텅텅 비었다. 예전에 비해 활기가 떨어진 게 피부로 와닿는다”고 덧붙였다.
업계 매출 1위 LG화학 직원들도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여수산단 내 LG화학 여수공장 앞에서 만난 파트장급 직원 C씨는 “30년 가까이 근무하고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사이에 직장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데 돌파구는 없으니 규모만 축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씨는 “중국 제품이 국내 제품보다 품질이 조금 떨어진다 해도 가격이 30% 정도 싸다”며 “최근엔 대안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얘기하는 데, 내놓을 거면 벌써 만들어냈다. 돌파구가 없다”고 한숨 쉬었다.
상황이 이러니 설 명절을 앞뒀지만 상여금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또 다른 LG화학 3년 차 직원 D씨는 “명절 한 달 전쯤에는 어느 정도 상여금 얘기가 나온다”며 “좋을 때는 기본급의 400~500%도 나왔는데 지금은 얘기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산단 내 기업과 근로자의 위축된 심리는 인근 편의점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산단 내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E씨는 “12월은 각 부서가 법인카드를 소진해야 하는 때라 커피믹스, 간식 등이 잘 나가는 ‘대목’”이라며 “매년 12월이면 하루 매출이 300만원을 오갔는데 올해는 1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암울한 분위기는 여수 산단 주요 기업의 실적 부진 탓에 더욱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석유화학 산업의 주요 기업인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한화솔루션 등 ‘빅4’의 실적은 그야말로 급전직하했다.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과 비교해 적자로 돌아섰다. 롯데케미칼은 상황이 심각하다. 2022년 7626억원, 2023년 347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3분기 413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약 6600억원에 달한다. 결국 여수 산단 제2공장의 5개 라인 중 2개 라인은 가동을 중단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3분기 81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2024년 줄곧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은 겨우 영업이익을 냈지만 전성기와 비교하면 이익 폭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3분기 LG화학의 영업이익은 약 4983억원으로, 전년 동기(8604억원)와 견줘 42% 감소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같은 기간 842억원에서 651억원으로 22.7% 줄었다. 지난 3분기 기준 ‘빅4’의 누적 영업손실은 약 5012억원까지 늘어났다. 여수=이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