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싹싹했던 그를 모르는 손님이 없었다” 깨비시장의 눈물 [세상&]

서울 목동깨비시장 차량돌진 사고 그 후
피해 가게앞 추모 공간…과일·술·꽃 놓여


지난달 31일 오후 7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40대 남성 1명이 사망했고 12명이 다쳤다. 사진은 2일 오전 목동깨비시장의 한 가게 앞 사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추모 공간. 안효정 기자.


“한달 전 우리 친정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진 않았거든요.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2일 오전 10시께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 후문 사거리 앞의 한 과일가게. 청록색 천막을 뚫고 가게 밖으로 연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주인 A씨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과일을 주워 휴지로 닦다 이내 멈추더니 허공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가게 내부를 정리하던 A씨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청소라도 하려고 이렇게 (가게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틀전 이곳에선 차량 돌진으로 매대에서 과일을 팔던 40대 남성 B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2월 31일 오후 4시께 버스를 앞질러 가속하던 검은색 에쿠스 차량은 시장 내부로 약 40m를 질주해 거리 위 행인과 상점 등을 덮쳤다. 사고를 낸 운전자 김모(75) 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서울 양천경찰서에 입건된 상태다.

가게 앞에는 B씨를 추모하는 공간도 작게 꾸려졌다. ‘직원의 안타까운 사고로 1월 3일 발인까지 가게를 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글이 적힌 상자판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과일과 소주, 음료수, 꽃 등이 작은 원의 형태로 모여 있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7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40대 남성 1명이 사망했고 12명이 다쳤다. 사진은 2일 오전 목동깨비시장의 한 가게 앞 사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추모 공간. 안효정 기자.


추모 공간을 바라보던 A씨는 “(B씨는) 2015년부터 약 10년동안 붙어 일했던 가족같은 친구였다”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A씨는 “사고 당일 점심 때만 해도 떡국을 같이 끓여 먹으면서 ‘새해에도 화이팅하자’는 얘기를 나눴다”며 “아직도 그가 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제발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시장 상인들도 B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침통해했다. 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C씨는 B씨를 두고 “인사성이 밝고 성실한 청년이었다”고 전했다. C씨는 “B씨가 있으면 시장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성격이 싹싹하고 좋았다”면서 “말도 안 되는 비극적인 소식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고 했다. 인근에서 과일을 파는 한 상인도 “부지런하고 손님들이랑도 친하게 지내서 여기 시장에서 (B씨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며 “이렇게 일찍 갈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 역시 사고가 난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묵념을 하는 등 B씨를 추모했다. 사고 발생 당시 시장서 울려퍼진 굉음을 듣고 달려나왔다는 목동 주민 D씨는 “가스가 폭발한 줄 알고 신고하려고 나왔는데 내가 아는 청년이 참혹한 일을 당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면서 “위급 상태라는 얘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붙잡고 있었는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또다른 시민은 “시장에 올 때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하겠다. 부디 좋은 곳 가셨으면 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운전자 김씨는 2년 전 치매를 앓았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2022년 2월 양천구의 한 보건소에서 치매 소견을 보여 치료 권고를 받았으며, 그해 9월 적성검사 후 1종 보통 운전 면허를 갱신했다. 경찰은 또 김씨가2023년 11월부터는 서울 소재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아 3개월간 약을 복용했으나, 사고 당일이나 최근엔 치매 관련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 목동깨비시장 차량 돌진 사고를 낸 운전자가 10개월 동안 치매 치료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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