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교의 시조 아브라함의 고향 샨르우르파를 가다[함영훈의 멋·맛·쉼]

튀르키예에서 ‘예언자의 도시’로 불리는 샨르우르파, 아브라함의 연못 [함영훈 기자]


샨르우르파는 상고사의 1만2000년 신전 부터 중세 오스만시대 유적까지 통시대적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은 호텔로 변신한 오스만시대 고택


[헤럴드경제(튀르키예 샨르우르파)=함영훈 기자]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라는 구절은 크리스트교(가톨릭+개신교+정교회) 신자가 아니라도 대부분이 아는 신약성경의 첫 머리이다.

지금의 튀르키예 샨르우르파에서 나고 자라면서 이 도시의 선지자 역할을 했던 아브라함(이슬람교는 ‘이브라힘’이라 부름)은 이삭 만 낳지는 않았다.

아들 8명중 큰 아들은 이스마엘이다. 딸들은 확인하기 어렵다. 아브라함의 세 부인의 소생 중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아랍인의 조상으로 여기는 이스마엘(어머니는 하갈)을 크리스트교도들이 인정하지 않고 이삭(어머니는 사라) 만을 강조했기에, 이슬람을 잘 몰랐던 우리는 이삭 만을 잘 기억한다.

성경을 보면, 기독교도들의 장자 배척은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를 격하시키는데에서도 나타난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는 빼어난 미모때문에 가나안땅 남쪽 그랄왕국의 왕에게 납치되기도 했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아브라함이 이슬람교, 크리스트교, 유대교 모두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것은 분명하다.

샨르우르파에 있는 괴베클리테페[함영훈 기자]


▶괴베클리테페의 고을 리더였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고향 샨르우르파(튀르키예 동부)와 그 일대엔 빙하기 직후인 1만2000년전 지어진 신앙생활공동체 구조물 괴베클리테페(인류 최초의 신전, 유네스코 세계유산)가 있고, 그 무렵 농경-정착 문화가 시작됐으며, 샨르우르파가 속한 아나톨리아엔 9000년 전 조성돼 신석기 문화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콘야 주변 차탈회의크(튀르키예 중부,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적이 있다.

아나톨리아 남동쪽은 기원전 4000여년전 선진문명 첫 발명이 많았던 바빌로니아,히타이트의 각축이 있었고, 이집트 람세스 군대를 격퇴한 히타이트제국 이후엔 화폐를 최초로 발명한 리디아, 화폐경제를 인류 최초로 일으킨 미다스왕의 프리기아, 일찍이 카파도키아와 교류하던 앗시리아가 경쟁했다.

이어 마케도니아, 그리스, 로마, 동방에서 온 셀주크, 몽골, 투르크가 번갈아 차지하며 동서 융합 문화를 일궈나가던 곳이 바로 아나톨리아이고 그 중심도시는 앙카라, 콘야, 가지안테프, 그리고 샨르우르파이다. 샨르우르파에 있는 괴베클리테페는 동 티크리스-서 유프라테스 두 강의 발원지 한복판에 위치한다. 터키항공은 괴베클리테페 주변 지역에서 1만2000년전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빵을 복원해 비즈니스석 승객에게 나눠준다.

터키항공이 비즈지스 탑승객에게 제공하는 1만2000년전 가장 오래된 빵


아브라함은 철기문화가 성숙했던 시대에 샨르우르파에서 태어나 자라고 공동체를 이끈 것으로 고증되고 있다. 기원전 20세기 사람이라는 크리스트교의 주장은 후속 연구가 진행되면서 확인할 근거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역사와 경전(토라)의 간극이 크지 않은 이스라엘 유대교의 검증작업, 페르시아의 역사, 튀르키예 역사가들의 분석 등 다양한 고증작업을 종합해보면 아브라함의 시대는 기원전 800년대~400년대 사이로 모아진다.

▶샨르우르파 페르시아 의상 코스프레

아브라함이 3대 종교 모두 ‘예언자의 도시’로 부르던 샨르우르파(옛 지명 ‘하란’)에서 ‘무리의 우두머리’(수백명의 일꾼을 거느린 족장)의 지위에 있었다는 점은 이슬람,크리스트,유대교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연못 주변에선 다양한 종교, 관습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웃음꽃을 피운다.


그래서 샨르우르파 여행자들의 모습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유대교, 무신론자, 중동에서 스스로 다르다고 여기는 이란인 등등 각양각색의 복색과 풍속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샨르우르파 전통의상 코스프레를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세상에 이렇게 평화로운 종교성지가 있을까 싶다.

주민이나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아브라함의 연못(발르클르괼)이다. 한국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전통복장 코스프레를 시켜줄 때 우리는 한복을 제공한다.

이곳 샨르우르파 전통의상 코스프레 상인들은 페르시아 복색을 내어준다. 많고 많은 제국이 거쳐간 이곳 사람들이 왜 페르시아(쿠르드 전통문양이 코스프레 의상의 중심 테마라고 함) 복색을 전통의상이라면서 여행자들에게 내어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시절(기원전 6~4세기)과 아브라함 활동기가 겹치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을 해본다. 물론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샨르우르파 구시가지


아브라함의 연못가 리즈바니예 모스크 포토존


▶진정한 성지 샨르우르파 아브라함의 연못

아브라함의 연못 주변에는 1716년 세워진 리즈바니예 모스크가 연못에 멋진 반영을 드리우고 연못 안에서는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뛰어 논다. 사람이 가면 더 모여드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다.

이곳엔 전설이 있다. 이웃 넴루트 지역의 왕이 우상숭배를 비판하는 아브라함을 화형하려 했으나, 불길은 물로, 장작은 물고기로 변했다는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의 연못과 펄펄 뛰어노는 물고기를 보면 믿기 힘든 이 전설에 잠시나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꼭대기 까지 오르는 것이 통제돼 있는 샨르우르파 성채 아래엔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이 있다. 이곳 샘물은 치료효과가 있다고 입소문이 났는데, 샘 앞에는 늘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고고학 박물관, 모자이크 박물관, 메블리드 할릴 모스크 등 샨르우르파 중심부 광장과 아브라함 연못이 멀지 않아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샨르우르파 음식엔 매운 고추를 넣는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에 속한 샨르우르파의 음식은 인도~한국 사이 동양 만큼 매운 편이다. 청양고추 급 이소트(sot) 고추가루가 케밥에 들어간다. 동방의 만두를 닮은 치이쾨프테 완자도 있다.

우르파 지예르 케밥은 닭 부산물로 만들었는데, 동물 부산물까지 지혜롭게 요리에 활용하는 점이 동양을 닮았다.

▶모든 종교는 통한다 샨르우르파의 진정한 평화

샨르우르파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는 매운맛을 경험하면서, 문득 수십년전 부터 신학 전문가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크리스트교 선지자 그룹의 부처 제자설이 떠오른다.

불교-크리스트교 관련설은 크리스트교의 기초를 세운 선지자들이 동방을 다니면서 부처가 설파하는 내용도 익혔고, ‘진리는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불교)’=‘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 ‘자비로워야 한다(불교)’=‘원수를 사랑하라’, ‘고행 후 해탈(불교)’=‘고난 후 부활’ 등 불교적 가르침과 수행과정 일부를 벤치마킹 후 확대발전시켰다는 주장이다. 증명하기 어려운 ‘설’이기는 하다.

K-팝 노래를 부르며 한국인들에게 친근감을 표하던 샨르우르파 소녀들


모든 신앙의 목표가 사랑, 자비, 선행, 성실 등으로 서로 통한다는 점은 이처럼 다양한 주장들을 낳는다.

어쨌든, 다양한 종교를 믿고 다양한 관습을 가진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연못가에서 한데 어울려 웃음꽃을 피우는 샨르우르파 풍경을 통해, 문명의 다르다고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어느새 K-팝도 샨르우르파 소녀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괴베클리테페 모형을 테이블 위해 올려놓고 방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흐멧 볼랏 터키항공 회장이 문화유산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한편, 샨르우르파의 괴베클리테페를 비롯한 1만2000년전 12개 신전군에 대한 발굴조사 보존작업, ‘타쉬 테펠레 프로젝트’는 터키항공(회장 아흐멧 볼랏)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튀르키예의 8개 대학, 12개 기관 및 해외 5개국의 8개 대학과 4곳의 국제 아카데미, 연구소 및 박물관이 참여하고, 지상 관통 레이더 등 첨단기술이 총동원돼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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