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최악은 지났다”지만…‘탈정유’ 재편 사활 [비즈360]

정유 4사, 작년 3분기 조단위 영업손실
4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개선 예상되지만
고환율 악재…사업구조 개선도 필수적
SAF·바이오선박유 등 신사업 확대 사활


챗 GPT를 이용해 제작.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지난해 혹독한 불황으로 분기 기준 조단위 영업적자를 기록한 정유업계의 실적 개선세가 주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대내외 사업환경이 격변하며 ‘기름집’으로 통하는 정유사들은 ‘비(非)정유’ 신사업 다각화로 활로를 찾고 있다.

5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중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146억원, 1756억원으로 집계됐다. 각각 4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냈던 전분기 대비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정제마진 견뎠더니…고환율 쓰나미


앞서 정유 4사의 작년 3분기 합산 영업손실은 1조4592억원이었다. 이는 정유사 수익성의 가늠자인 정제마진 급락에 부진한 수요가 겹친 탓이다. 석유제품 판매가격에서 원유가·운임 등 비용을 뺀 정제마진은 배럴당 평균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해 1분기 평균 7.3달러였는데, 2분기 3.5달러, 3분기 3.6달러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정유설비 가동률 조정으로 정제마진 회복 흐름이 감지되며, 국내 정유사의 4분기 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업계에선 새해 정제설비 순증 물량이 지난해 대비 줄고, 폐쇄 물량은 늘어나며 수급 상황이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고환율이 발목을 잡았다. 비상계엄 발표 직전인 작년 12월 3일 1402.9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같은달 30일 1472.5원까지 치솟았다. 새해에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탄핵과 정치 리스크 등이 더해지며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정유사는 원유를 전량 달러로 수입하는 구조 탓에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이 불가피하다. 국내 정유업계는 연간 10억 배럴 이상 원유를 수입하는데,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연간 환차손은 1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원유를 석유제품으로 가공해 정제해 달러를 받고 재수출해도, 폭증한 원유 구입 비용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 많다.

트럼프 변수에 탈탄소까지…신사업 전환 사활


이런 가운데 정유업계는 새해 ‘트럼프 2기’ 출범 및 탈탄소 흐름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업계는 트럼프 시대가 마냥 기회만 널린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화석연료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 향후 원유가 하락으로 국내 정유사들의 원료 도입 비용은 줄어들 수 있다. 다만 원유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제품 가격 변동성으로 정제마진이 늘지는 확신할 수 없다.

또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해지고 관세가 늘면, 지역별 이동 수요가 줄며 선박유·항공유 수요가 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유가는 떨어지지만 정제 마진은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한국에는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실제로 트럼프 1기 당시 미중 무역 분쟁으로 양국이 서로 관세를 높여 교역이 일어나지 않았고, 정제마진이 낮아지며 업계가 어려움에 처한 바 있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추진과 에너지전환의 시대적 흐름도 장기적인 과제다. 정유업계는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업종으로 꼽히는 만큼 구조적 변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기업들은 지속가능항공유(SAF), 재생합성연료(E-fuel), 바이오선박유, 액침냉각 등 신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SAF·바이오선박유 등 신사업 속도


최근에는 세계 각국이 사용 의무화를 추진하는 친환경 연료 SAF가 화두다. SAF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중 최초로 지난해 6월 SAF 일본 마루베니 사를 통해 일본 ANA 항공사에 공급한 바 있다. 이는 SAF의 내수, 수출 모든 채널에서 상업 판매로는 국내 최초다. 당시 유럽연합 인증을 받은 ISCC EU 방식의 제품을 수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6년 SAF 상업 생산을 목표로 SK울산콤플렉스(CLX) 내 전용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는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유럽에 SAF를 수출했다. GS칼텍스도 핀란드 네스테로부터 SAF를 공급받아 대한항공과 SAF 시범 운항을 진행 중이다. 에쓰오일은 폐기물 기반 바이오연료 실증 사업을 추진하며, 국제 SAF 인증을 획득했다.

바이오선박유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최초로 초저유황 바이오선박유를 선보이며, 최근 이를 대만 선사 양밍에 공급했다. GS칼텍스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바이오연료 관련 국제 친환경 인증인 ISCC EU를 획득한 바 있다.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겨냥한 액침냉각 시장 선점에도 나섰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가 세계 최대 액침냉각 시스템 기업인 GRC로부터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했다. 에쓰오일도 작년 10월 인화점 섭씨 250도(℃) 이상의 고인화점 액침냉각유 ‘에쓰오일 e-쿨링 설루션’을 출시했다. GS칼텍스는 재작년 11월 자체 액침냉각유 브랜드인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S’를 출시했다.

한편 국내 정유업계의 신속한 신사업 비중 확대를 위해선 속도감 있는 지원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신사업 전환은 선진국에 비해 빠르다고 할 수 없다”며 “정부가 지원 계획을 발표하긴 했지만, 경쟁 타이밍을 놓치면 안되는 만큼 전용 설비 구축 등 대규모 투자 시 인센티브 등을 적극 지원해야 기업들도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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