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찢어가며 최선 다한 기장님”…28만5060명 추모 행렬 [세상&]

분향소 추모 인파 이어져…일부 연장 운영
28만명 추모 행렬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길”
제단엔 손편지 빼곡, 어린 희생자 기리는 장난감도


용산보건소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분향소. 제단 위에는 장난감 자동차 한 대가 놓여있다. 지난 3일 분향소 운영자는 “연세가 있어보이는 어르신이 어린 나이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장난감 한 개를 두고 가셨다”고 말했다. 김도윤 기자.


[헤럴드경제=안효정·김도윤 기자] “이번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 모두 좋은 곳 가시길, 그리고 부디 그곳에선 마음 편히 지내시길 바랄 뿐입니다.” (시민 A씨)

지난 5일 오후 6시께 서울 마포구 홍대앞 거리에 설치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분향소. A씨는 집으로 향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곳을 찾았다. 제단에 헌화한 뒤 1분쯤 묵념을 하고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전라남도가 고향이라 남일 같지 않게 느꼈지만 유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죄송스러운 마음에 분향소라도 왔다”라고 말했다.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의 국가애도기간이 지난 4일로 끝났지만 전국 곳곳의 합동분향소마다 시민들의 추모 발길은 계속되고 있다. 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애도기간 마지막날까지 전남 무안공항 1층과 무안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 서울시청 본관 등 전국 105곳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28만5060명이다.

합동분향소는 사고 발생 바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순차적으로 설치·운영됐다. 당국과 지자체 등은 당초 대부분 합동분향소를 4일까지 운영하기로 했으나,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면서 전남·광주 12곳과 기타 지역 19곳 등 총 31곳의 분향소 운영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서울 영등포구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분향소. 안효정 기자.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희생자들을 기리며 헌화를 했고, 일부는 눈물을 훔쳤다. 시민 이모(64) 씨는 “나에게도 6살짜리 손주가 있는데, 참사 뉴스 보니 우리 손주 생각이 저절로 나더라. 내 가족 일이라고 생각돼 며칠 전 미사 가서도 많이 울었다”면서 “여행 보낸 자식들을 잃은 가족들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프다. 얼마나 평생에 슬프고 한이 되겠느냐”라고 안타까워했다.

분향소 연장 운영 소식을 듣고 해외 출장 일정을 마치자마자 조문하러 왔다는 시민 백모(47) 씨는 “희생자들이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을지 가늠이 안 된다”면서 “나 역시 비행기를 자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라고 했다.

조문객들 중에는 승무원 준비생들도 있었다. 국내 항공과에 재학 중인 주에스더(21) 씨는 “승무원들은 비행기 착륙이 매끄럽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 해야하는지 교육을 받고 사고 ‘서티 세컨즈 리뷰(30 seconds review)’라는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이번 참사는 그런 것도 전혀 소용없을 정도로 심한 사고였던 것 같다”라면서 울먹였다.

이어 주씨는 “희생자들이 너무 안타까워 분향소를 두고 지나칠 수 없었다”면서 “매뉴얼을 찢어서까지 최선을 다하신 기장님께 존경하고 고생하셨다는 말씀도 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주씨 옆자리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묵념하던 이서윤(21) 씨는 “날씨도 추운데 유족분들도 몸 잘 챙기셨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서울 강남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분향소 제단 위에는 ‘얼마나 놀라시고 무서우셨어요. 저희 곁에서 같이 살아주시고 웃어주시고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손편지 하나가 있었다. 김도윤 기자.


지난 3일 오후 늦게 강남구 분향소를 찾은 대학생 이모(25) 씨는 “희생자분들 명단에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계셨다”면서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니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어쩌면 내 죽음이었을 수 있겠다 싶어 나 또한 많이 두렵고 슬펐다”라고 했다.

이날 제단 위에는 국화와 함께 ‘얼마나 놀라시고 무서우셨어요. 저희 곁에서 같이 살아주시고 웃어주시고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손편지도 놓여 있었다.

한편, 국토교통부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에 따르면 사고 현장 수색과 희생자 179명의 시신 인도 절차 등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안공항을 일주일째 지켰던 유족들도 장례를 치르기 위해 속속 떠난 상태다. 사고 현장 수색·수습 작업도 일단 마무리됐다. 가족이 찾악가지 않은 유류품 700여점은 공항에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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