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트는 일자목ㆍ바이올린은 틀어진 목
일자목 개선해야 호흡악기 연주력 향상돼
음악가들 악기, 분야 따라 직업병 각양각색
연습하지 않으면 불안한 병ㆍ계획하는 병
바이에른 방송교행악단의 6년 만의 한국 공연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어깨를 최대한 올려볼까요? 여기 다들 라운드 숄더이시네요. 호흡을 과사용하면 어깨와 등에 빨간불이 켜집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재활 아카데미 현장. 이동신 굿볼메소드 강사는 수십년간 한 악기를 다뤄온 연주자들과 만나자 맞춤형 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플루티스트들은 일자목이 많다”며 긴급 처방에 돌입한다. 트레이너가 일러준 대로 연주자들은 빨간색 볼을 들어 목 뒤로 가져간다.
“목뼈로 볼을 지그시 누릅니다. 둘, 셋, 넷, 다섯…. 끝까지 누르고 유지합니다. 힘을 빼고, 다시 목뼈로 볼을 누르고 유지합니다.”
핵심은 빨간색 공으로 목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목뼈로 볼을 누르는 것. 이 운동법이 “거북목과 일자목 개선에 좋은 훈련”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누구에게나 직업병은 있다. 매일 책상에 앉아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 중고등학생도, 사무실에서 커다란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작업해야 하는 직장인들도 피해갈 수 없다. 같은 일을 수십년에 걸쳐 반복하는 사람들일수록 직업병은 더 빨리 찾아온다. 이르면 서너 살, 아무리 늦어도 중학교 시절부터 직업을 정한 연주자들에겐 반갑지 않은 손님과 같다.
이동신 굿볼메소드 강사는 “플루트와 같은 호흡악기는 일자목이 될 경우 호흡 능력이 떨어진다”며 “볼 관리를 통해 커브를 만들어 호흡을 일으키는 가슴근육을 이완해주면 편안한 상태로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100명의 플루트 연주자와 트레이닝을 해보니, “일자목 개선 훈련을 하면 호흡 능력이 70~80% 가량 좋아져 연주에도 도움이 됐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 [마포문화재단 제공] |
신체적으로 유발되는 직업병의 경우 연주자들이라고 해서 유별난 것은 아니다. 거북목, 일자목, 터널 증후군, 어깨 통증 등을 안고 사는 것은 매한가지. 다만 운동선수처럼 매일 같이 특정 부위를 사용하기에 남들보다 더 빨리 닳게 된다. 성악가를 비롯해 노래하는 직업, 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성대 결절 위험이 남들보다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피아니스트 김도현(31)은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거북목이 많다”고 했다.
개인차는 당연히 있지만 연주자들의 경우 특정 악기군과 연주자세에 따라 어깨와 무릎 통증을 많이 달고 다닌다. 굿볼메소드에 따르면 관악기 연주자들은 등뼈와 흉부 문제,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팔꿈치나 어깨, 틀어진 목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한다. 오래 앉아 연주해야 하는 경우엔 틀어진 골반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 ‘비오는 날’이면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KNSO아카데미에서 만난 비올리스트 최지우(27) 씨는 “연주를 하다 보면 어깨가 너무 아프다”며 “현악기를 하는 친구들 대부분 물리치료를 받거나 주사를 맞으며 관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윈저 페스티벌 국제 콩쿠르 2위, 예후디 메뉴인 구게 콩쿠르 2위,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 2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25)도 악기 연주법으로 인한 몇 가지 직업병을 들려줬다. 그는 “한 팔로 활을 켜다 보니 한쪽 팔만 근육이 발달해 양쪽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고음역대 악기를 턱에 댄 채 연주를 반복해온 시간이 길어 “왼쪽 귀가 오른쪽 만큼 잘 들리지 않는다”는 고충도 토로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피아니스트 박재홍 [마포문화재단 제공] |
손이 생명인 연주자들에겐 평생 음악가로 살기 위해 손을 지키는 일도 필수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2019)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26)은 “몸을 쓰는 직업들이 대체로 비슷한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취미로 격한 운동이나 구기 종목을 갖기는 어렵다”며 “개인적으로 축구의 오랜 팬이고 보는 것과 직접 뛰는 것을 모두 좋아하는데, 손을 주로 쓰지 않는 구기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손에 부상을 입을까 싶어 선뜻 즐길 수 없어 최근엔 경기 시청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근력 운동도 조심한다. 그는 “손목에 무리가 갈 위험이 있어 무게를 적당히 들 수 밖에 없기에 무게보다 횟수 위주로 운동을 해야하는 제한사항도 있다”고 했다. 대신 김동현이 즐기는 운동은 러닝이다.
직업병의 종류는 각양각색이다. 신체적인 직업병과 연주자로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신체활동의 제약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통된 직업병 중 하나는 ‘음악을 듣는 방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송하는 “길거리에서든 버스 안에서든 음악이 가장 거슬린다”며 “대중음악을 들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이 사람은 왜 이런 음을 썼지?’, ‘왜 이 악기를 썼지?’라는 생각을 하면 음악을 듣는다”며 웃었다.
연주자들의 경우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들어도 ‘음이 먼저 들려온다’는 경우가 상당하다. 피아니스트 김도현도 “가사가 좋아 음악을 듣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은 “연주자이기 이전에 음악을 공부하고 탐구하는 사람이자 클래식 음악의 한 명의 팬으로서 연주회를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바이올리니스트의 협연 무대나 리사이틀은 해당 무대 위의 연주자의 실력과 관계없이, 오롯이 음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연주를 듣는 내내 손에 땀이 나고, 다가올 제 무대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긴장됐던 기억이 많다”며 “그래서인지 근 몇 년 간은 피아노 등 다른 악기가 주가 되는 연주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 [마포문화재단 제공] |
악기를 막론하고 연주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사명은 삶의 방식도 바꾼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은 “연습을 안 하면 불안해지는 병을 앓고 있다”며 웃었다. 실제로 클래식 음악계엔 자타공인 연습벌레들이 많다. 김도현은 “요즘엔 휴식의 중요성을 깨달아 많이 내려놓긴 했는데 연주회가 있을 땐 악몽을 꾸기도 한다”며 “한 번도 쳐보지 않은 곡들을 무대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꿈에 많이 나온다”고 했다. 최송하도 “어릴 때는 자유롭게 쉬었지만, 연주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탈 경우 며칠 연습을 못하면 그 다음날 더 신경써서 하게 된다”며 “아무래도 10대 때는 뼈가 유연해 연습을 쉬어도 쉽게 기존 기량으로 돌아오는데 성장이 마무리된 이후엔 뼈와 근육이 굳어져 며칠만 쉬어도 티가 난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하루에 12시간씩 연습을 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스스로를 연습벌레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연습을 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있다”고 했다.
작곡가의 직업병은 ‘작곡’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만들어내 상당히 독특한 지점이 있다. 클래식부터 국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고전음악을 작곡하는 손일훈(35)은 “작곡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고, 작곡가들은 몇 분짜리 곡을 쓸 것이라는 계획이 짜여져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플래닝(planning)에 대한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며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만날 때 세 시간을 쓰겠다, 하루를 쓰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스스로를 컨트롤하려고 하는 경향이 없지는 않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