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신약개발, 남녀는 평등하지 않다


신약 개발은 약 1만개의 후보물질 중 단 하나만 시장에 도달하며, 평균 10년의 시간과 수천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약물은 비임상연구 단계에서 실패한다. 기존 동물모델과 2D 세포 배양시스템이 인간생리와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안전성과 효능 예측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비임상시험에서 암컷 동물을 포함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 대부분의 연구는 남성 데이터와 수컷 동물을 중심으로 이뤄져 여성에서의 약물 반응 차이를 예측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약물 중 76%가 여성에게서 더 높은 부작용 발생률을 보였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항부정맥제 ‘소타롤(Sotalol)’이 있다. 이 약물은 QT 간격 연장이라는 심각한 심장 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데 연구에 따르면 여성에서 이 독성이 더 자주 발생한다. 이는 여성의 심장 이온 채널 발현 차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사례인 심부전치료제 ‘디곡신(Digoxin)’은 여성에서 더 높은 혈중농도를 보여 부작용 위험이 증가한다. 이는 여성의 간 대사효소 발현이 남성과 다르게 작용해 약물 대사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임상시험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약물 개발 초기 단계부터 성별을 반영한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기에 발생한 결과다. 남성과 여성은 약물의 흡수, 대사, 분포, 배설 과정에서 생리학적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여성은 남성보다 체지방비율이 높고 혈류량이 다르며, 호르몬 변화로 인해 약물반응에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기존 비임상연구는 이러한 차이를 여전히 간과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줄기세포 기반 오가노이드와 장기칩(Organ-on-a-Chip) 같은 차세대 비임상연구모델이 차세대 비임상시험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인간 유도만능줄기세포 기반 오가노이드는 인간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시험관에서 재현하는 3D모델로, 성별 세포특성을 반영한 연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심장 오가노이드는 QT 간격 연장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으며, 간 오가노이드는 성별에 따른 대사효소 차이를 분석해 독성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차세대 모델은 성별 간 약물반응 차이를 이해하고 반영하는 데에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성별 맞춤형 연구는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미국 FDA와 유럽 의약품청(EMA)은 이미 성별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비임상연구 단계에서 성별 차이를 반영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성별 맞춤형 비임상모델 개발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성별 간 차이를 고려해 약물 독성과 효능을 보다 정밀하게 평가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을 제공하는 길이다.

약물 개발 초기부터 성별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작은 차이를 간과한 약물이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약물은 모든 사람에게 안전해야 한다. 성별을 고려하지 않는 연구는 더는 과학적 발전이라 부를 수 없다.

이향애 안전성평가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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