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사이즈에 꽂힌 그녀 AI기반 ‘관성 깨기’ 도전장

AI솔루션 펄핏 이선용 대표 인터뷰
48만명 발 데이터 기반 ‘1분’ 측정
내 발에 딱 맞는 맞춤 신발 추천
서비스 이용업체 반품률 55% 줄어
수요예측 가능…재고개선 효과도


48만명의 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사이즈 추천’서비스를 개발한 이선용 펄핏(Perfitt) 대표 [펄핏 제공]


“전 세계 신발 판매 시장의 뿌리 깊은 관성을 극복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10년 전 이선용 펄핏(Perfitt) 대표는 높은 연봉과 우수한 복지를 자랑하는 글로벌 IT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이후에도 험난한 시행착오 끝에 발견한 게 바로 ‘신발 사이즈’다.

뿌리 깊은 관성을 극복하자는 목표를 강조했다. 400조원 규모의 신발 시장에도 거대한 관성이 존재한다. ‘신발은 신어 보고 사야 한다’. 신발은 유독 사이즈 선택이 어렵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신발은 규격화된 기성품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가 신발 사이즈에 꽂힌 배경이다.

2015년에 설립된 펄핏은 비대면으로 발 사이즈를 측정하고, 이에 걸맞는 신발 사이즈를 추천하는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신어보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내 발에 딱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게 도와준다. 48만명의 ‘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도의 인식 측정 시스템을 갖춘 영향이다.

일반 소비자들도 펄핏의 솔루션이 탑재된 쇼핑몰에서 ‘AI 사이즈 추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과정은 어렵지 않다. 여러 각도의 발 사진을 촬영하는 게 전부다. 1분 남짓 측정이 끝나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 데이터와 결합해 사이즈 추천 결과가 나온다.

이 대표는 “규모가 큰 거대 시장인 만큼 관성이라는 게 많이 고착화 돼 있었다”면서 “모두가 묵인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연한 것’에 대한 도전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별명이 ‘사장님’이었다”고 전했다. 그 영향이었을까. 청소년기부터 ‘창업가’를 꿈꿨다. 정확히는 모두를 매료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이 대표도 전형적인 길을 걸었다. 어린 시절 유학을 경험했고, 국내 굴지의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에는 글로벌 IT회사에서 대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러다 입사 3년이 지난 시점, 회사를 그만뒀다.

이 대표는 “더 이상 미래를 생각하며 ‘희망’을 느낄 수 없었다”며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길이라고 해서, 흘러가는 대로 계속 가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직관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었다. 관련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결국 뚜렷한 길을 찾지 못했다. 야심차게 뛰어든 ‘원데이 클래스(일일 강좌)’ 중개 사업은 자금 부족으로 인해 1년 도 채 안 돼 정리했다.

그러던 중 ‘신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느 날 해외 직구로 농구화를 구매했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 골치를 겪었다. 주변에서는 “원래 신발은 신어 보고 사야 돼”라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이 대표는 불편을 수긍하지 않았다. 그래서 태어난 게 펄핏이다.

이 사업모델은 단순히 편리함에 의미가 그치지 않는다. 통상 온라인 신발 쇼핑의 반품률은 30%가 넘는다. 최대 문제는 배송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펄핏에 따르면 반품 신발 1개당 평균 181g의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

이 대표는 “신발 시장 규모가 스마트폰 시장(500조원)과 비슷한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환경오염”이라며 “펄핏 서비스를 이용해 신발 사이즈 추천을 진행한 업체의 반품률은 평균 55%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발은 한 상품당 옵션이 30개 내외로, 타 상품에 비해 재고 예측이 어렵다. 전체 신발의 30%가량이 팔리기도 전에 버려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태워지거나 제3국으로 흘러가 쓰레기가 된다.

이 대표는 “30개가량 옵션을 수량별로 정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예측과 수요는 항상 빗나간다”면서 “타깃층에 맞는 발 사이즈 데이터를 확보해 수요를 예측할 경우 획기적으로 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속가능성’까지 장착한 펄핏은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프로스펙스, 네파 등 신발 업체에 이어 ABC마트 등 유통사에도 서비스를 공급했다. 최근에는 ESG 경영을 중시하는 해외 업체들에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내년까지 약 500개 고객사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장기적인 목표는 소비자들이 신뢰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 이 대표는 “기술을 통해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더 좋게 발전시킬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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