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굳어지나…커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글로벌 IB들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 상향
전국 평균 휘발유값 리터당 1700원 눈앞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조정 줄이어
전문가 “탄핵정국 길어질수록 고착화”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의 주간 평균 가격이 12주 연속 동반 상승했다. 11월 넷째주 ℓ당 1638.30원이던 전국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1월 8일 현재 1688.36원으로 3.1%(50원) 상승했다. 사진은 5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


원/달러 환율 상승에 기름값이 12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채소·과일 값이 폭등하며 장바구니 물가도 비상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바라보면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도 빗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9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잇따라 한국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조정했다. JP모건과 HSBC는 지난해 11월 말 각각 1.7%와 1.9%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전망했으나 12월 말에 모두 2.0%로 올려잡았다. 이들이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조정한 것은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 역시 고환율이 새해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릴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 12월 ‘물가 상황점검회의’에서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근 고환율 등으로 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물가 전망 경로상에는 환율 움직임, 소비심리 위축 영향, 공공요금 인상 시기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1.9%로 11월(1.5%)보다 0.4%포인트 높아진 이유에 대해서도 11월 중순 이후 환율 상승이 12월 물가상승률을 0.05~0.1%포인트 끌어올린 요인으로 봤다.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실생활에서도 체감할 수 있는 정도다. 기름값 상승이 특히 무섭다. 12월 물가 상승률이 다시 2%대에 근접한 원인도 석유류 가격이 1.0% 올라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한 것이 절대적이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전인 11월 넷째주 ℓ당 1638.30원이던 전국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1월 8일 현재 1688.36원으로 3.1%(50원) 상승했다. ℓ당 1700원을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기름값은 운송비, 난방비 등 전반적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농산물 가격은 지난해에도 10.4% 급등해 2010년(13.5%)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물류·운송비가 오르면서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심리 악화로 내수 경기가 얼어붙고 환율 급등에 물가는 오르는 악순환 속에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하향 조정되고 있다.

글로벌 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11월 말 평균 1.8%에서 12월 말 1.7%로 0.1%포인트 하락했다. 일부 IB는 1.3%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28일 한은이 내놓은 전망치(1.9%)는 물론 정부가 지난 2일 경제정책 방향에서 상정한 성장률 전망치(1.8%)에도 못 미친다.

이들이 올해 우리 성장률 전망치를 추가로 하향조정한 결정적 변수는 ‘내수 불황’이다. 계엄 사태 이후 전국 신용카드 이용 금액이 한 달 전 대비 급감하는 등 민간 소비가 위축되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사태 발발한 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14일) 사이 기간인 12월 둘째 주(12월 7~13일) 전국 신용카드(신한카드 기준) 이용 금액은 4주 전 대비 7.2% 감소했다. 계엄과 탄핵 여파로 11월 셋째 주(20.1% 증가), 12월 첫째 주(2.6% 증가)와 비교해 민간 소비가 급감한 것이다.

이에 한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고환율로 인한 고물가 상황은 탄핵정국이라는 단기적인 정치상황이 만들어 낸 만큼 저상장·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글로벌 IB들이 한국 물가상승률을 상향조정하고 있지만 상승률로 보면 2%대인 만큼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2% 수준인 만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반면 현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올해 1분기말까지 장기화될 경우 저성장·고물가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현재 불안한 정국이 얼마나 빨리 안정되느냐에 달렸다”며 “특히 원유 등 에너지 분야 수입은 장기 계약을 하기 때문에 올해 1분기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면 고물가가 장기화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훈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