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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판서댁 [함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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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위에 놓인 원형 다리 세종 이응다리 |
[헤럴드경제(세종 부강)=함영훈 기자] 대한민국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의 눈동자’, 원형 ‘이응(ㅇ)다리’는 금강 위에 놓여있다. 세종대왕 한글반포의 해 1446년 숫자에 맞춰 원둘레가 1446m이고 다양한 설치예술, 휴식공간, 전망대, 산책로, 자전거길을 갖춘 하나의 관광명소이다.
세종시 이응다리를 지나는 금강의 앞과 뒤를 보면 흥미롭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옥천-보은-청주 일대 대청호에서 용(龍)의 모습으로 흘러나와 소금 집산지 강경과 바닷물반 민물반 서천 하구를 통해 차분히 서해바다에 합류한다.
▶조선의 금강물류 허브, 부강= 금강을 따라, 바다자원은 서천→강경→세종으로, 농산자원은 보은→옥천→세종으로 운송되고, 미호강이 금강에 합류하는 세종시 부강면과 합강은 금강 물류의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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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
금강 수운의 거점으로 서해에서 나는 수산물과 소금, 일용잡화, 세종-충북 농산촌에서 나는 내륙산물이 모여, 물류허브, 집산시장의 기능을 한 것이다. 부강포구는 특히 강경에서 오던 1등급 소금을 하역해 보은, 상주 등지로 출하하던 곳으로 현금 유동성이 좋았던 곳이다.
높지 않은 산이 군데 군데 있는 평야지대로 영호남의 갈림길이었기 때문에 의미있는 헤리티지가 적지 않다.
홍판서댁, 부강성당, 복두산성, 노고봉수, 애기바위성, 보만정 정자, 그리고 지금은 자전거하이킹, 캠핑의 메카가 된 합강, 한옥카페 휴휴당 등 인구 1만명의 면(面) 지역에 편안한 마음으로 들러볼 곳이 많다.
홍판서댁은 부강면 고을의 북쪽, 느린 경사의 구릉지에 남향으로 안착해 있다. 지금은 금강쪽으로 읍내가 형성돼 있지만, 아마 홍판서가 일제의 귀족 작위 제안을 거부한 채 안빈낙도하던 시절엔 금강이 훤히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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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판서댁 우물은 체험학습 학생들에게 인기이다. |
▶일제 유혹 뿌리친 홍판서 고택 유계화씨가 잘 보존=고택의 공식 명칭은 유계화가옥이다. 1866년 지어진 이 한옥은 병조,예조판서 등을 지낸 홍순형의 처음 소유했고, 지금까지 11번 주인이 바뀌었다. 유계화씨가 이 문화재가 잘 보존되도록, 정갈하게 관리했다고 알려진다.
홍순형은 조선 26대왕 고종의 대한제국 시절, 궁내부, 규강각의 주요책임자를 맡았고, 판서를 할 때 침략을 당해, 일제가 남작 작위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24대왕 헌종의 부인 효정왕후의 조카이다.
여담이지만, 헌종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 나오는 효명세자의 아들로, 조선 임금 중 가장 잘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효정왕후와 선남선녀였다고 한다. 효정왕후는 최연소(19세) 대비(왕실 할머니), 대한제국 왕실의 최고 여성 어른(특별히 홍성:弘聖의 존호를 받음), 조선의 마지막 궁녀(천일청)을 돌본 대왕대비라는 기록 보유자이다.
부강리 고택은 조선후기 양반가 한옥의 자유분방한 개성이 엿보인다. 추운지방에서나 보이던 ‘ㅁ’자 중정이 있는데, 보통 조선 한옥의 중정은 깔끔하게 비우지만, 이집엔 우물이 있고 우물과 마당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할 목적의 향나무가 심어져있다. 그네도 있었지만 중정이 복잡한 것 같아 오래전 없앴다고 한다. 경쾌하고 청량한 ‘첨벙’ 소리와 함께 두레박으로 우물 물을 긷는 과정은 체험학습 온 학생들이 매우 흥미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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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판서댁 좁은 응접 내실 |
▶고택 마루 정담..이웃엔 건국훈장 받은 가네코후미코 족적= 대문 바로 앞에 사랑채가 있는데 볕이 잘 드는 마루에 앉으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자매의 마음에도 사랑과 평화의 마음이 깃드는 것 같다. 한 직장 여성 선후배가 고택의 마루에 나란히 앉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은 지나는 여행자의 기분도 좋게 한다.
판서집이라도 고대광실(高臺廣室:매우 큰 집)을 뽐내지 않았다. ‘ㅁ’자 중정에 우물과 향나무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좁았고, 부엌은 주방, 목욕탕, 창고의 기능을 겸하며 공간효율성을 높였다. 선비들의 토론방 살롱은 ‘두사람이 무릎이 닿는 방’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작다. 중정 밖와 담장 근처엔 감나무, 대추나무가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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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판서댁의 부엌은 다용도실로 효율을 높였다. |
이곳은 지역의 작은 문화 행사가 열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인근 김재식 고택도 비슷한 ‘ㅁ’자형 구조인데, 홍판서댁과는 조금 달라, 조선후기 내집 가꾸기 개성들을 엿본다.
부강은 무정부주의 항일 독립투사 박열의 부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가 태어나서 성장하던 곳이기도 하다. 홍판서댁 인근에 그녀가 살던 고모집 터가 남아 있다.
무정부주의자였기에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던 가네코 후미코(1903~1926)는 1912년부터 1918년까지 부강공립심상소학교(현 부강초등학교)에 다녔다. 자세한 어린시절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이후 1922년 5월 도쿄에서 박열을 만나 1923년 3월까지 항일 무정부주의자 기관지를 만들며 사랑을 나누었고, 그해 9월 체포돼 1926년 모진 고문과 낙후된 감옥에서 병마에 시달리다 수감중 사망한다.
2018년에야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됐고, 이제야 부강에서 그녀의 족적과 교훈을 추적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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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열사 가네코후미코의 불꽃 같은 생애를 담은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
굳이 김문자 우국지사 또는 박문자 열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네코후미코라는 그녀의 일본식 이름이 주는 느낌은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이 아니라, ‘한민족과 남편에 대한 사랑을 위해, 열정으로 살다간 촛불같은 부강 여인’이라는 것이다.
▶합강 캠핑, 부강성당, 모두 물류노동자의 쉼터= 홍판서 댁에서 서쪽으로 4km 가량 떨어진 지점, 금강줄기에 미호강이 합류하는 합강에 이르면 부강 금강종주 자전거길과 합강캠핑장을 만난다.
억새풍경과 노을의 조화, 그 속에서 강물에서 먹이를 찾는 철새들의 풍경이 아름답다.
합강캠핑장엔 어린이 놀이터도 있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텐트옆엔 자전거 한 대쯤 세워둔 여행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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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강 캠핑장 |
홍판서댁 대로 건너편에 있는 부강리 성당은 부강 지역 노동자들의 점심시간 휴식터가 되었다. 원래 1934년 지어진 한옥 성당인데, 이 한옥은 카페로 바뀌었다.
조선 말에 지어진 초기 성당 대부분이 프랑스 신부에 의해 프랑스식 건물로 중국 노동자에 의해 지어졌던 것과 달리 이곳은 1950년대에 지어져 미국인이 설계해 북미식 건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준다. 상공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원과 종탑의 모양이 이국적이다. 지어진지 70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종교적·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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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성당 |
▶동네 경사, 모두가 축하해주는 인정= 부강엔 넓은 마당을 가진 한옥 숙소-카페 휴휴당이 있다. 10개의 객실이 준비되어 있고, 2개의 다이닝룸에서 취사가 가능하다. 야외마당에서는 기업행사,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부강이 동서 물길을 잇던 금강 물류는 고속도로의 건설과 함께 쇠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마포갈비 처럼 예전 상인들이 모이는 포구에 맛집들이 많고 그 전통이 이어지듯, 부강 석갈비 등 미식으로도 인기가 높다. 지금은 이 마을 주변으로 많은 고속도로와 국도가 십자로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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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 석갈비 |
부강초등학교 재학생 이강산이 경찰청장기 전국단체대항 태권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현수막이 동네 곳곳에 걸린 것으로 보아, 이 고을에 경사가 있으면 주민 모두 축하해주는, 인심 넘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