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콘이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선보인 ‘로봇 비전 시스템’. 라스베이거스=김현일 기자

[헤럴드경제(라스베이거스)=김현일 기자] 일본 기업들은 올해 CES 2025 무대에서 한국·중국 기업들과는 다른 전시 콘셉트로 승부수를 띄우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때 ‘전자왕국’ 일본을 대표했던 이들은 전성기가 끝나고 몰락 위기에 처했으나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점차 예전의 위용을 되찾는 모습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중앙홀은 ‘한·중·일 대전’이 펼쳐져 개막 첫 날부터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삼성전자, LG전자, SK그룹의 전시관과 마주보는 위치에 중국 하이센스와 TCL이 전시관을 꾸리며 맞불을 놨다. 여기에 일본 소니와 니콘까지 중앙홀에 가세해 자리를 잡았다.

일본 니콘이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선보인 ‘로봇 비전 시스템’. 로봇이 주방에서 집게 손을 이용해 식기를 옮기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김현일 기자

우리에게 DSLR 카메라 제조회사로 잘 알려진 니콘(Nikon)은 이번 CES 2025 전시관에 가정집 주방을 차렸다. 이곳에서 30분에 한 번씩 전문 셰프와 주방로봇이 나와 이색 쇼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주방로봇은 집게 손으로 그릇들을 하나씩 식기세척기에 옮겨 넣기 시작했다. 세척이 끝나면 식기세척기를 직접 손으로 열고 그릇들을 다시 꺼내 정리했다. 그릇마다 다른 크기와 소재, 두께를 인식해 면적이 큰 그릇부터 하나씩 겹쳐 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세히 보니 로봇의 집게 손 끝에는 ‘사람의 눈’과 같은 카메라 렌즈들이 숨겨져 있었다. 카메라 렌즈들을 통해 물건 위치를 빠르게 인식하고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니콘이 선보인 ‘로봇 비전 시스템’의 집게 손 끝에는 카메라 렌즈들이 내장돼 있었다. 라스베이거스=김현일 기자

니콘 전시관에서 만난 하츠키 사사키는 “로봇 자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니콘이 직접 개발한 것”이라며 “아직 데모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전시회의 주방 콘셉트에 맞춰 기획했으며 니콘의 ‘로봇 비전 시스템’은 주방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기존 카메라 산업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일본 올림푸스는 카메라 사업에서 손을 뗐고, 니콘도 줄곧 위기론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니콘은 기존 카메라 렌즈 사업에서 쌓은 광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로봇 사업 등에 뛰어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소니는 대형 스크린과 차량을 동원해 자사의 새로운 차량 촬영 시스템 ‘PXO 아키라(AKIRA)’를 최초로 선보였다. 라스베이거스=김현일 기자

소니(SONY) 역시 CES 2025에서 완전히 달라진 사업 아이템들로 전시관을 채웠다. 과거 세계 TV 시장 1위에서 적자 기업으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소니는 최근 영화, 드라마,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선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강점을 살린 자동차 관련 기술이 압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소니는 대형 스크린 앞에 실제 차량을 세워놓고 360도 돌려가며 자사의 새로운 차량 촬영 시스템 ‘PXO 아키라(AKIRA)’를 처음 선보였다. 여기에는 크레인 카메라, 맞춤형 모션 플랫폼, 디지털 트윈 기술 등이 동원됐다.

소니는 가상 환경에서도 마치 실제 도로에서 주행하는 것과 같은 차량 촬영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소니가 혼다와 합작설립한 소니혼다모빌리티의 첫 전기차 ‘아필라1’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소니 전시관을 찾았다. 라스베이거스=김현일 기자

아울러 혼다와 합작설립한 소니혼다모빌리티의 첫 전기차 ‘아필라1’도 이번 CES 2025의 인기 상품이었다. 사람들은 전시 초반부터 아필라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국내에서도 기아 등 완성차 업계 관계자들이 방문해 ‘아필라1’의 외관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소니혼다모빌리티는 올해 아필라1을 출시할 계획이다.

소니는 엔터테인먼트 강자답게 아필라1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구축을 담당하며 자동차 산업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걸쳤다.

과거 TV 시장 트렌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한국에 주도권을 내주고 몰락한 소니는 콘텐츠 지식재산권(IP) 사업으로 다시 예전의 면모를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