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입고 있는 게 부끄러워…軍에 미래 있나”
“육사 폐교 얘기 나오는데 이제 고졸 되게 생겨”
‘12·3 비상계엄’으로 실추된 軍 신뢰 회복 난망
2024년 12월 10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상현 1공수여단장(오른쪽)을 비롯한 군 장성들이 계엄 당시 군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친척과 지인들은 물론 가족들로부터도 온갖 험한 소리를 듣거나 ‘당신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있다. 그저 ‘그렇지 뭐’라고밖에 대꾸를 못하는데 요새처럼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게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현역 영관급 장교의 말이다.
군인 역시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의 피해자다.
대한민국 안보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헌신했건만 군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2024년 12월 3일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한 위관급 장교는 국군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통해 “퇴근 후 주차하고 걸어가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저를 따라다니며 한번도 아니고 수차례나 ‘계엄군, 반란군’이라고 소리치다 도망가곤 했다”며 “함께 걷던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그 누구도 말리기보다 함께 웃고 손가락질하는 현실이 정말 착잡하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이 장교는 “여러분이 보기에는 아직 군에 미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12·3 비상계엄에 적극적이든, 미온적이든 관여한 군 수뇌부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높다.
커뮤니티에는 “정치군인들이 군대를 자신의 출세, 권력의 도구로 사용해 군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5·16 군사쿠데타와 12·12 군사반란에 이어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육사 출신들의 자괴감도 커지고 있다.
육사를 졸업한 한 위관급 장교는 “육사 폐교 얘기까지 나오는데 이제 고졸이 되게 생겼다”는 자조섞인 말과 함께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군인을 비하하는 ‘군바리’라는 은어는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공군사관학교 졸업 뒤 소령으로 전역한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엄에 관여한 군인들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왜 예전에 우리가 군바리 소리를 들었느냐”며 “이걸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 과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수십년에 걸친 엄청난 노력으로 군바리 딱지를 떼어냈다”고 말했다.
부 의원은 이어 “이제 군이 제 자리를 잡고 있었다”며 “그런데 국가비상사태도 아닌데 계엄이 어떻게 성립되느냐. 그러니깐 반란이다”고 지적했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와 전두환·노태우의 12·12 군사반란을 거치며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군이 수십년에 걸쳐 정치와 거리를 두고 군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만 집중하면서 ‘군바리’라는 멸칭(蔑稱)을 씻어낼 수 있었지만 12·3 비상계엄에 군이 가담함으로써 다시 군바리로 전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군바리는 ‘시다바리’처럼 ‘군인’과 무리를 뜻하는 일본어 ‘바라’(ばら)의 합성어라는 설과 ‘군인’과 소형 애완견 ‘발바리’의 합성어라는 설 등 다양한 얘기가 있다.
그러나 어원은 불분명해도 군인을 낮춰 부르는 말로 군과 군인에 대한 심한 모욕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장병들과 오찬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문제는 12·3 비상계엄 이후 군바리라는 은어가 다시 회자될 만큼 나락으로 떨어진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얼마의 노력이 필요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한 예비역 대령은 “소수의 몇몇 군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군이 완전히 역사의 죄인이 돼버렸다”며 “군 신뢰와 군 사기 회복까지 얼마가 걸릴지 누가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현역 장성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앞으로 몇 십년 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12·3 비상계엄은 결국 북한과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안보에도 커다란 타격을 줬다고 기록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