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겠다”던 ‘가황’ 나훈아…마지막곡 ‘사내’ 부르고 눈물 [고승희의 리와인드]

은퇴 콘서트로 가수 인생 59년 대장정 마무리

청년 나훈아·백발 가황의 콜라보 무대 인상적

“하늘에서 내려와 땅 밟으며 장날 한잔 하고파”

 

가수 나훈아[예아라, 예소리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 세상을 믿었다 후회 역시도 없다,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갈 거다.”

59년 노래 인생을 ‘사내’에 실어 보냈다. 가황 나훈아(78)는 후회도 미련도 없다 했지만, 목소리는 끝내 떨렸다.

나훈아는 지난 10~12일까지 사흘간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KSPO) 돔에서 총 5호 공연으로 은퇴 공연 ‘라스트 콘서트-고맙습니다’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이라며 “저는 이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이제 여러분이 대신 불러달라”고 말했다. 마이크를 드론에 실어 하늘로 띄우는 퍼포먼스는 그의 오랜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이벤트였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자필 편지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진리를 따르고자 한다”며 은퇴 계획을 알린 이후 4월 인천을 시작으로 총 15개 도시에서 끝인사를 건넸다. 모든 지역에서 열린 공연은 전회차 매진을 기록했고, 이번 서울 공연은 총 5회차 7만 장의 티켓이 불과 5분 만에 팔려 나갔다. 공연 티켓은 이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최고 1억 원의 가격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강경옥(70) 씨는 “부산에서 공연을 본 뒤 마지막 공연을 함께 하고 싶어 서울도 오게 됐다”며 “평생을 함께 해왔는데 마지막이라니 너무 서운하고 섭섭하다. 무대는 떠나더라도 우리 곁에 항상 있어주길 바란다”며 아쉬운 마음을 들려줬다.

서울에선 첫 날을 제외한 주말 동안엔 하루에 두 차례의 공연을 이어갔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가황은 은퇴 공연이라는 인사가 아쉬울 만큼 흐트러짐 없이 건재한 모습이었다. 2시간 30분간 총 23곡의 히트곡을 망라해 들려줬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정치, 사회, 경제 이슈를 꼬집었다.

첫날 공연에선 자신의 ‘왼팔’을 가리키며 “니는 잘했나!”라는 거침없는 언사로 회자됐다. 이 발언이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자, 이어진 다음날 공연에선 “저것들(정치권)이 뭐라고 하는 것은 내가 절대 용서 못 하겠다”고 되받아치기도 했다.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시민들이 ‘2024 나훈아 고마웠습니다 – 라스트 콘서트’ 1회차 관람을 마친 뒤 공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

마지막 서울 공연은 1967년 데뷔, 지난 59년간 ‘음악 외길’을 걸어온 가황의 여정을 관통하는 무대였다. 그는 음악 인생동안 200장의 앨범, 1200여 개의 자작곡을 포함해 2600여 곡으로 대중과 만났다. 나훈아는 “내가 노래하는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며 긴 가수 인생사를 보여주듯 박정희를 시작으로 윤석열에 이르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무대 전광판에 띄우기도 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까“라며 ”대통령 정도되면 ‘(나보고) 오라’고 하는데, 나는 ‘왜 부르노’ 하니 나를 취급을 안 하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를 땐 1980~90년대의 청년 나훈아의 모습이 등장해 2025년 백발의 가황과 한 무대를 꾸몄다. 시공을 초월해 포개진 두 남자의 듀엣엔 시간의 향수가 묻어났다.

‘고향역’을 첫 곡으로 ‘18세 순이’ ‘홍시’ ‘무시로’ ‘고향으로 가는 배’ ‘테스형’ 등으로 이어지며 노래 속에 나훈아의 삶을 녹여냈다. 그는 싱어송라이터이면서 콘서트 전반을 직접 기획하고 연출하는 멀티테이너로 새로운 공연 문화를 개척해왔다. 마지막 콘서트에도 그는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내가) 전 세계 가수 중에서 직접 작사작곡해 부른 노래가 가장 많고 히트곡도 가장 많다”며 “다 여러분을 스승으로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시민들이 ‘2024 나훈아 고마웠습니다 – 라스트 콘서트’ 1회차 관람을 마친 뒤 공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

남진과의 라이벌 시절, 세 번의 결혼과 이혼, 2008년 여배우와의 염문설, 신체절단설 등 시대를 풍미한 무수히 많은 풍문도 이제는 웃으며 넘기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그는 ‘신체절단설’ 기자회견을 떠올리며 “‘니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냐’ 할 수 있지만, ‘내 보고 밑에 다 잘렸다’ 한다”며 “지금은 웃지만 내 속이 어땠겠냐. ‘내 있습니다’하고 꺼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청년 시절 못잖은 단단한 음색이 지나온 시간을 노래했고, 2020년 ‘테스형’, 2023년 ‘기장갈매기’까지 부르며 59년을 돌아본 그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 전 “마이크를 내려놓는게 우리 식구들에게 죄짓는 기분이라 미안하다”고 했다.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이크를 하늘로 띄울 땐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별, 스타였으니까. 그게 좋을 것 같아도 사람이니까 별로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앞으론 안 해본 것 해보고, 안 먹어본 것 먹어보고, 안 가본데 가보려 합니다. 장 서는 날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는 게 가장 하고 싶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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